현장에서
‘SKT-CJ헬로비전 합병심사 174일째 질질 끌어.’ ‘스텝 꼬인 5조 투자…통신장비 중기 2500곳 생존 위기.’ ‘CJ헬로비전 공방…반년째 고민하는 공정위.’
일부 신문들이 에스케이텔레콤(SKT)의 씨제이(CJ)헬로비전 인수합병 인가 심사 일정이 이례적으로 늦어지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를 비판하고 나섰다. 인수합병 당사자들 말을 빌려 “심사를 시작한 지 24일로 174일을 넘겼다. 역대 최장”이라고 지적했다. ‘질질 끌어’, ‘의사결정장애’, ‘전문가 부족’ 등의 표현까지 동원하고 있다.
급기야 공정위는 장문의 해명자료를 내어 “자료 보완 기간을 빼면 아직 심사 기간이 많이 남았고, 신중하게 심사하느라 1년을 넘긴 적도 있다”고 하는 등 조목조목 반박했다. 발끈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언론이 정부의 ‘늦장 심사’ 태도를 지적할 수는 있다. 공정위가 총선을 전후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공정거래법은 인수합병 인가 심사 일수를 접수일로부터 120일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자료 보완 기간은 심사 기간에서 빠진다지만 174일을 넘기도록 진전된 게 없으니 늦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 신문이 ‘비정상’을 비교 잣대로 삼은 것이다. 2002년 에스케이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합병 심사는 145일, 2009년 케이티(KT)와 케이티에프(KTF) 합병 심사는 35일, 같은 해 엘지텔레콤(LGT)·데이콤·파워콤 합병 심사는 47일 만에 끝났지만 이번 건은 이미 174일을 넘겼다고 꼬집었는데,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합병은 1위 이동통신사업자가 3위를 흡수해 ‘슈퍼 1위’가 된 것이다. 에스케이텔레콤은 가입자 점유율을 60% 이상으로 높였고 매출 점유율은 더 높아졌다. 누가 봐도 인가될 수 없는 사안이었지만, 공정위는 가입자 점유율을 낮추라는 등의 조건을 붙여 인가했다. 당시 공정위 간부가 전원회의 전날 <한겨레>를 찾아와 “인가해 줄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해 달라”고 하소연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후 에스케이텔레콤이 가입자 점유율을 낮추려고 유통점으로 하여금 경쟁 업체인 엘지유플러스 가입자 유치 영업을 하게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독과점 상황이 가속화하면서 경쟁은 실종됐고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이 커졌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도 계속돼, 이번 심사에서도 에스케이텔레콤의 막강한 이동통신시장 지배력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신세기통신 인수합병 인가 건은 공정위 내부에서도 오점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합병 인가 심사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잘못하면 에스케이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합병을 허술하게 인가해 경쟁을 실종시키고 가계통신비 부담을 키운 과거를 되풀이할 수 있다. 언론 역시 ‘비정상’을 잣대로 삼아 공정위를 몰아붙이는 행태는 중단하는 게 옳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김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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