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지원책, ‘약’인가 ‘독’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리 욱성해야” “이미 혜택받고 성장…소기업 어려움 커져”
정부 육성안 놓고 찬반 팽팽
중소기업도 아니고 대기업도 아닌, 이른바 ‘낀 기업’인 중견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중소기업기본법이 정한 중소기업의 범위(종업원 300인 이하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는 벗어났지만, 공정거래법상 규제대상인 대기업(자산 2조원 이상)의 범주에도 들지 않는 중견기업들을 적극적으로 길러, 나라 경제의 ‘허리’를 튼실히 한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으로서 세제 혜택과 정책자금 등 각종 지원을 받아 성장한 이들 기업을 다시 지원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산업의 ‘허리’를 키우자”= 산업자원부는 다음달 초 중견기업의 정의와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담은 ‘중견기업 육성방안’을 마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할 계획이다. 국가 핵심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한 부품소재 산업에서 점차 중견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은경제연구소의 심상규 박사는 “최근 전국 30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산업별 중견기업 비중을 보면, 전자부품 통신장비(16.0%), 자동차·트레일러(9.8%), 화합물 및 화학제품(10.0%) 등 부품산업이나 지식기반산업에 중견기업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기은경제연구소는 중견기업의 정의를 ‘종업원 300명 이상 1천명 미만, 매출액 4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으로 정의했다. 귀뚜라미보일러, 샘표식품, 종근당 등 420여개 회원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중소기업 범위에서 벗어났어도 아직 많은 기업들이 원가 경쟁력으로 싸우고 있고, 기술력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전문 연구인력 확보, 수출 마케팅의 노하우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히 중소기업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순간, 모든 지원이 한번에 끊겨버려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설명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8월,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중견기업도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을 이용할 수 있고 공장 증설과 관련한 각종 부담금도 감면받는 내용을 뼈대로 한 ‘중견기업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발의했다.
“‘캥거루’기업 만드나”= 그러나 중견기업 지원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중견기업 특별법이 제정되면 중소기업과 관련된 법안은 소기업·소상공인 특별법과 재래시장 육성 특별법, 여성기업 지원특별법, 벤처기업 지원특별법 등 모두 5개에 이른다. 또 정책자금 지금 등 직접지원이 포함되면, 재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영세 소기업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 이윤보 건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견기업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은 어린 동생이 먹을 밥을 성인이 된 형들이 빼앗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비판한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범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넓고, 경제 규모가 우리보다 큰 일본에서도 중소기업의 범위는 자본금 30억원 이하로 훨씬 적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으로서 충분한 혜택을 받고 성장한 기업들이 또다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이기적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중견기업의 주장은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손벌리는 ‘캥거루족’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한 중소기업체 사장도 “가뜩이나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는 영세 소기업들의 어려움이 더해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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