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서울고법 ‘주가 재산정’ 결정문 보니
합병과정 불공정성 다시 불거져
“총수일가 이익 위해
일부러 실적 낮췄을 수 있어”
에둘러 ‘주가조작 가능성’ 지적
삼성물산 “재항고 하겠다”
합병과정 불공정성 다시 불거져
“총수일가 이익 위해
일부러 실적 낮췄을 수 있어”
에둘러 ‘주가조작 가능성’ 지적
삼성물산 “재항고 하겠다”
삼성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총수 일가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의 주가 하락을 유도했을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와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두 회사의 합병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합병 과정의 불공정성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3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35부(윤종구 부장판사)의 결정문을 보면,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의도적인 주가 관리 의혹을 조목조목 짚었다. 우선 재판부는 두 회사의 합병 결의 시점에 제일모직 주가가 상대적으로 높고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아야 이건희 회장 등 총수 일가에 이익이 된다고 지적했다. 총수 일가 지분이 제일모직은 42.19%나 되는 반면에, 삼성물산 지분율은 1.41%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총수 일가의 합병법인 주식 소유 비율이 높아지게 돼 삼성의 주력기업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사정 탓에 삼성물산이 합병 전에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춰 이 회장 등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다는 게 재판부의 추정이다.
실제 합병 결의 직전인 지난해 5월22일 삼성물산 주가(5만5300원)는 지난해 1월2일(6만700원)보다 8.9%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지에스건설, 대림산업 등 주요 건설사들의 주가가 각각 33.0%, 29.6% 등이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재판부는 그 원인을 삼성물산이 주택 신규 공급이나 물량 수주 등 주가를 높일 수 있는 호재를 의도적으로 합병 결의 뒤로 늦추거나 공개를 미뤘기 때문으로 봤다. 구체적으로 2015년 상반기 주택경기가 활황이었던 상황에서 다른 주요 건설사들은 주택 신규 공급을 크게 늘렸으나 삼성물산은 300여가구만 공급했다가, 합병 결정 뒤인 지난해 7월에야 서울에 1만994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2조원 규모의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따놓고도 쉬쉬하다가 합병 뒤에야 이를 공개한 것도 그 근거로 들었다. 나아가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에는 삼성물산이 주관하던 공사 가운데 일부를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넘겨주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런 이유로 “시장가격(주가)이 실제 삼성물산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삼성물산의 실적 부진이 이건희 회장 등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도 있다는 의심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옛 삼성물산 지분 2.11%를 보유한 일성신약과 소액주주가 “삼성물산 쪽이 합병 시 제시한 주식매수 가격이 너무 낮다”며 낸 가격변경 신청에서 원심을 뒤집고 매수가격을 올리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합병 결의일을 기준으로 나온 기존 보통주 매수가 5만7234원 대신 합병설이 나오기 전인 2014년 12월18일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산출한 6만6602원으로 정했다.
기업지배구조연구원 윤승영 연구위원은 “다른 판례가 법령상 요건만 따져 소극적으로 해석했다면, 이번 재판부는 증권사 리포트, 언론 보도 등 다양한 시장 의견을 분석하고 인용해 적극적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그동안 합병과 관련한 여러 법원 결정과는 전혀 달라 납득하기 어렵다. 결정문을 면밀히 검토해 재항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금융당국은 법원의 삼성물산 주가가 의도적으로 낮게 형성됐다는 판단에 말을 아꼈다. 금융감독원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등 불법 행위 여부에 대한 판단은 대법원의 결정이 나온 뒤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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