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허찔린 ‘불공정 합병’…이재용의 지배력 강화 차질

등록 2016-05-31 19:44수정 2016-05-31 22:33

삼성물산 항소심 패소 파장

법원 “의도된 주가 하락 의심”
신규공사 등 합병 뒤에야 공개
다른 건설사들 주가 오를 때
삼성물산만 거꾸로 하락  

삼성 “꺼진 불씨 살아난 느낌”
계열사 합병-지주사 전환 통한
이 부회장 승계 구상에 부담
주주들 추가소송 이어질수도
“이게 축하받을 일입니까?”

삼성 3세 경영의 주역인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총에서 합병이 결정된 뒤 미래전략실의 임원으로부터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고서 걱정스레 한 말이다.

이 부회장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옛 삼성물산의 지분 2.1%를 가진 일성신약이 합병에 반대하며 제기한 주식매수가격 청구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매수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다며 일성신약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삼성으로서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를 뚫고 어렵사리 합병을 성사시킨 뒤 안도하고 있다가 허를 찔린 셈이다. 삼성은 “1심에서는 일성신약이 패했기 때문에 뜻밖의 결과다. 꺼진 불씨가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며 당혹해했다.

시장도 예상치 못한 결과라며, 다윗(일성신약)이 골리앗(삼성)을 이긴 셈이라는 반응이다. 법무법인 한누리의 김주영 변호사는 “그동안 보수적 태도를 보여온 법원이 재량권을 적극 활용해 주식매수가격 청구를 받아들인 드문 사례”라며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향후 유사한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물산 주식매수가격이 애초의 주당 5만7234원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결정한 6만6602원으로 높아질 경우 삼성물산이 일성신약에 추가 지급해야 할 돈은 350억원 정도다. 하지만 삼성의 실제 타격은 이를 훨씬 상회할 전망이다. 재판부가 주식매수가격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밝힘으로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비율(1 대 0.35), 이에 근거한 합병이 불공정하다는 시장의 의구심이 법원에 의해 확인된 셈이기 때문이다. 통합 삼성물산의 주가가 합병 뒤 크게 떨어져 투자자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꼴이 됐다.

재판부가 합병 비율을 총수 일가에 유리하도록 만들려고 의도적으로 삼성물산의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을 유도한 혐의가 있다고 밝힌 것도 큰 부담이다. 재판부는 “옛 삼성물산은 이건희 회장 일가의 주식 비율이 낮고, 제일모직은 높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낮을수록 이 회장 일가에 유리해진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근거로 삼성물산 이사회가 2015년 5월말 합병 결의를 하기 직전 주택경기 회복으로 다른 건설사의 주가가 모두 올랐는데도 삼성물산만 유독 떨어진 점, 주택 신규 공급을 늘리지 않고 대형 신규 수주가 없었던 점을 꼽았다. 일반 주주들로서는 주가조작 혐의를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 3세 승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애초 삼성물산 합병의 주목적은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라는 게 시장의 지배적 분석이었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이 부회장의 이런 지배력 강화 시도가 정당성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1990년대 후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인수로 대표되는 편법·불법 상속 논란, 이어 2000년대 삼성에스디에스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함께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불공정 합병 논란이라는 불명예스런 훈장이 추가된 셈이다. 삼성이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구상 중인 계열사 합병이나 지주회사 전환에도 상당한 부담이 따르게 됐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주회사 전환, 삼성물산의 재분할과 삼성전자와의 합병 등 여러 방안이 제시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삼성은 법에 따랐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최소한의 기준인 법 준수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좀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항소심 결정이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한 다른 투자자들에게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매수가격 인상 혜택은 일성신약처럼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 청구를 한 주주들에게만 해당된다. 또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나 합병이 곧바로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일성신약은 삼성물산을 상대로 합병 무효 소송도 진행 중이다. 일반 주주들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가조작 혐의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할 수 있지만, 금융감독 당국의 불법행위 입증이 선결 과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