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중요성 소신 불구 한은 통화정책에는 반영 안돼
한국은행이 30~31일 ‘고용과 성장: 거시경제정책과 구조개혁의 역할’을 주제로 연 국제콘퍼런스는 관심을 끌 만한 행사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활력을 되찾지 못하면서 성장과 고용의 중요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의 개회사는 특히 우리 현실과 겹쳐 눈길이 갔다.
“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고용이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 가계소득의 원천이 되는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총수요 증대를 유도해 나가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여 고용 확대에 도움이 되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미시적 차원에서도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의 육성과 창업 지원 등을 통해 일자리를 늘려 나가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겠다.”
이 총재 발언에 이견을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녹록지 않은 지금의 고용 상황에 걸맞은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 총재 말마따나 “고용이 양적으로는 늘어나고 있지만 질적인 면에서의 고용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고용의 양을 확대하는 일마저 여의치 않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얼마전 여야 3당 정책위의장들에게 “일자리 창출 여력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말씀을 솔직히 드린다”고 고백한 게 이를 뭉뚱그려 보여준다. 유 부총리는 며칠 뒤 “(내년까지) 고용률 70%를 달성하기는 솔직히 조금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도 했다. 고용률 70%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인데 이를 지키지 못하게 됐다는 말이다. 지난해 고용률이 65.7%여서 내년까지 4.3% 포인트를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용정책의 실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됐든 이 총재 발언이 실효성있는 고용 확대 방안을 이끌어내는 데 한몫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정부 등에 권고를 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한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이 총재가 고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 전문가들과 한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지금 고용통계에 특히 관심들이 많다. … 고용안정이라는 것이 가계나 개인 후생과 직결되니까. 경제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 국민의 풍족한 삶과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데 있기 때문에 고용안정이야말로 경제정책이 추구해야 하는 지향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재작년 11월 시중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도 ‘체감실업률’을 들먹이며 “앞으로 경제정책의 역점을 고용에 두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총재 발언이 한은 통화정책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그의 기자간담회 답변이나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 등을 살펴봐도 고용 문제를 고려해서 기준금리를 조정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성장이나 물가, 금융시장 동향이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가운데 고용은 지표를 점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예전보다는 언급 빈도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뒷전이다.
이런 실망스런 결과가 빚어지는 데는 이 총재를 비롯한 금통위원들의 의지 부족 탓도 있지만 한은법 탓도 크다. 한은법에 고용안정이 설립목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 만큼 이제 한은법 개정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침 20대 국회가 시작됐으니 이 총재와 한은이 이 문제를 고민해주길 바란다. 지금 상태로는 통화정책이 “고용 확대에 도움이 되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잘 알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현행 설립목적(물가·금융안정)에 고용안정 등을 추가한 법 개정안이 두어 차례 제출된 적도 있다.
한편, 이 총재는 개회사에서 “고용 확대를 통해 늘어나는 소득이 소비로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간 임금 및 고용조건의 불균형 완화,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미래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줄여줄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분배와 복지정책의 강화를 에둘러 주문하는 얘기다. 중앙은행 수장의 이 메시지 역시 귀담아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그랜드볼륨에서 열린 ‘2016년 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에서 땀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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