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의 이로운 경제
IMF와 OECD “불평등 확대가 경제성장 해롭다” 계속 경고
G20도 불평등 해소 노력 합의했지만 우리 정부 ‘나 몰라라’
IMF와 OECD “불평등 확대가 경제성장 해롭다” 계속 경고
G20도 불평등 해소 노력 합의했지만 우리 정부 ‘나 몰라라’
즐거운 뉴스가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굳이 찾으려고 하면 없지 않겠지만 경제 쪽이 더 그렇다. 이참에 ‘장밋빛 세계’를 그린 몇몇 글귀를 들춰보고 싶다.
카를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한 대목이다.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아무도 하나의 배타적 활동영역을 갖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기량을 닦을 수 있고 …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저 일을 하는 것이, 그리고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 고기를 잡으며 저녁에 가축을 돌보고 식사 뒤에는 토론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다음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우리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 나오는 말이다. “(2030년이 되면) 인간은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거나 적어도 해결될 전망이 보임에 따라) 탄생 이래 처음으로 실질적이고 영원한 문제와 맞서게 될 것이다. 경제적 걱정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즐겁게, 잘 살기 위해 자유를 어떻게 활용하고 여가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하는 문제말이다. … (현실이 될) 하루 3시간 혹은 일주일 15시간의 노동은 일처리를 한동안 미루도록 할지 모른다. 하루 3시간 노동이면 우리들 대부분의 일상적 욕구를 채우는 데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케인스의 전망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두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들먹이는 소재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사의 지향점을 모색한 장기기획 정도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싶다. 역사 발전에는 과감한 상상이 함께해야 하니까. 어쨌거나 마르크스와 케인스의 미래에서는 불평등이나 분배가 별다른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 현실과는 너무 다른 세상이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의 불평등 상황은 간단치 않다.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보수-진보 합동토론회가 ‘불평등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를 새로운 주제로 잡은 것은 이 때문이다.
7일 합동토론회에서 오고간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정부가 발표하는 소득 지니계수(지난해 처분가능소득 기준 0.295)가 실제보다 낮게 집계되고 있다는 점에 여러 전문가들이 동의했다. 고소득자가 조사 대상에서 많이 빠지는데다 금융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수치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해 새로 지니계수를 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수치가 매우 높은 축에 든다. 실제 분배상태가 공식 통계치보다 좋지 못하다는 얘기다. 또한 최상위 10%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4년 현재 47.9%로 불평등 국가의 대표격인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을 합한 부의 불평등 상태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조세와 재정지출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가 미미한 실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회원국의 경우 지니계수 개선효과가 15.2~34.6%에 이르지만 한국은 8.4%에 그치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이 대부분 역진적 구조로 돼 있다.
불평등의 폐해는 한둘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불평등 확대가 경제성장에 해가 된다고 계속 경고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한도를 넘으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두 기구가 예전에는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의제화한 적이 없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불평등 확대는 계층이동을 저해하고 사회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불평등 확대가 세계 금융위기를 낳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불평등 문제에 무관심하니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책임자들이 이를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참석한 지난해 11월 터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가 나왔지만 ‘나몰라’다. 심지어 불평등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여전히 꺼리고 있다. 그나마 여야 4당 대표들이 보수-진보 토론회에 참석해 불평등 해소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말잔치에 그쳐서는 안된다. 정부를 압박하고 법과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보수와 진보 합동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신욱 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실장,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홍민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김낙년 동국대 교수,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 인적자원정책연구부장, 주상영 건국대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