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대우 분식회계 방치”
금융당국 책임은 지적 없어
“겉핥기 감사·솜방망이 처벌” 비판
금융당국 책임은 지적 없어
“겉핥기 감사·솜방망이 처벌” 비판
“감사원이 대대적인 감사를 이미 완료했으며 감사 결과가 나오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그에 상응하는 관리책임을 받게 될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5월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하다 스스로 부실에 빠져 수술대에 오른 이들 은행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을 예고하며 한 말이다. 이들 은행은 결국 한국은행과 정부로부터 12조원의 자본을 수혈받게 됐다. 그러나 감사원이 15일 내놓은 감사 결과는 이미 알려진 사실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을 뿐 더 이상의 부실 원인이나 책임 소재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감사원은 이날 산업은행이 1조5천억원에 이르는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파악할 시스템을 갖추고도 이를 가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한 내부통제와 사전심의가 제대로 실시되지 않아 1조3천억원의 손실을 가중시켰다고도 짚었다. 그러나 산은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금융감독 역시 대우조선의 분식회계와 산은의 관리감독 부실을 조기에 포착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융위원회는 대우조선의 2대 주주(12.2%)이기도 하다. 감사원이 책임을 물은 건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등 3명의 전·현직 임원과 실무자 세 명에 그친다.
감사 결과를 보면, 대우조선해양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산업은행 퇴직자로 모든 안건에 찬성만 하는 거수기 노릇을 했다. 산업은행이 파견한 경영관리단 역시 산업은행 고위 경영진의 부당한 요구를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에 그쳤다. 감독제도나 시스템이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는 얘기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 경영진이 적자 상황에서도 직원들한테 성과금 등으로 930억원을 지급하겠다는 안건을 올렸으나 이를 거절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대우조선해양 최고경영자로 오다 보니 부당한 요구임에도 거절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낙하산 인사가 총체적 부실을 부른 근본적 원인이었음에도 감사원은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나 재발 방지책에 대해선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산은이 2011년 상근 감사위원제도 도입과 사전수주심의기구 설립 등을 요구했지만 이를 따르지 않은 것 역시 정치권과 연결된 최고경영자 책임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감사 결과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국가 경제를 흔들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는데도 그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지 못한 ‘겉핥기식 감사’이고, 금융위원회 등 정부 책임은 묻지 않고 실무자 문책만을 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감사원이 대우조선 전·현직 경영진과 산업은행 임원들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부실을 키운 책임을 끝까지 묻는 계기로 삼았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은 정부가 대주주이지만 민간기업이고 최고재무책임자 등도 민간인이어서 감사원 감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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