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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삼성물산 합병 때 신뢰 잃고도 국민연금, 왜 복기를 안할까요?”

등록 2016-06-20 17:42수정 2016-06-21 11:19

박유경 네덜란드연기금(APG) 지배구조 담당 이사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찬성 논란 뒤 신뢰가 땅에 떨어졌는데, 국민연금은 왜 ‘복기’를 하지 않을까요.”

지난 13일 홍콩에 위치한 네덜란드연기금(APG) 아시아 지사에서 만난 박유경(사진) 아시아 태평양 기업지배구조 담당 이사는 작심한 듯 국민연금을 비판했다. 네덜란드연기금은 운용자산규모 530조원으로 세계 5위권의 연기금이다. 박 이사는 이 연기금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의 지배구조와 기업윤리를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다.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비율을 두고 논란이 일 때도 그는 주주 자격으로 활발한 활동을 한 바 있다.

1년이 지난 지금, 같은 연기금 종사자로서 박 이사가 본 국민연금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성의 기미가 없다”. 이는 “같은 일이 또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박 이사는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만큼, 국민연금은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뒤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절차상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가이드라인에는 맞았는지, 외압은 없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그렇게 해야 시스템이 강해지고 시장 신뢰가 회복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금까지 “정당한 투자판단이었다”는 공식 설명 외에 어떤 소통도 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 당시 옛 삼성물산 주식의 약 11%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당시 불리한 합병비율을 두고 논란이 일었고, 국내외 의결권자문기관들은 국민연금에 ‘합병 반대’를 권고했으나 국민연금은 “의결권행사 지침에 따랐다”며 ‘합병 찬성’ 의견을 냈다.

박 이사는 ‘복기’를 통해 신뢰를 회복 중인 사례로 지난해 5월 회계부정 사태가 터졌던 일본 기업 도시바를 꼽았다. 도시바는 회계부정 사건이 터진 직후 위원회를 꾸려 누구나 접근 가능한 누리집 투자설명(IR)란에 회의 결과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 박 이사는 “문제 해결은 공개와 소통을 통해 이뤄진다”며 “도시바의 태도를 보고 시장참가자들은 이 회사에서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신뢰를 갖게 됐다. 사기업도 주주에게 이 정도의 책임감을 보이는데 연기금의 책임의식은 이보다 더 높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신뢰를 중시하지 않는 연기금의 존재는 사회적 감시 부족에서도 비롯된다. 박 이사는 “네덜란드에서는 월급의 25%가량을 연금으로 내기 때문에 연금가입자의 감시 수준이 높다. 연기금은 거의 날마다 뉴스에 등장할 정도다. 투자한 기업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연금이 과연 주주로서 책임을 다했는지’를 낱낱이 따진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연기금의 책임투자보다 수익성 악화에 더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하지만 박 이사는 연기금은 수익을 내기 위한 투자 못지않게 지배구조 등 책임투자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연금은 속성상 초장기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연금은 한 사람이 수십 년 부어서, 은퇴 뒤 수십 년 받는 ‘100년 투자’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로 인해 당장 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지는 않지만 30년 후엔 얘기가 다르다.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가 그리고 미래가 건강해야 안정적으로 기금이 확보된다.”

합병 뒤 삼성물산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20일 주식 종가는 12만2000원으로 통합 뒤 첫 거래일인 지난해 9월15일(종가 16만3000원)에 견줘 25%나 떨어졌다. 외국인 지분율은 통합 당시 11%에서 7%대로 떨어졌다. 박 이사는 외국인 이탈에 대해 “실적 하락 요인이 크다. 이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비중을 축소했다가 다시 사들일 수도 있다. 다만,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의구심을 품고 떠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합병 논란 뒤 삼성물산은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삼성에스디에스(SDS)의 물류사업부문 분할로 인해 또다시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초래한 상태다. 박 이사는 “(삼성물산과) 합병을 하든 안 하든, 주주들은 ‘절차적 정당성’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만일 합병이 진행될 경우 한 방향의 주주들에게 일방적으로 이익을 줘서는 안 되고, 한쪽 회사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칠 수밖에 없다면 합병비율을 통한 보상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콩/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사진 박유경 이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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