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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정부는 왜 추경 편성을 두고 머뭇거리나

등록 2016-06-22 14:29수정 2016-06-22 14:45

이경 선임기자의 ‘이로운 경제’
분위기 무르익었는데도 결정 미뤄…국가재정법 개정해야

브라질 정부가 재정지출을 장기간 동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최장 20년 동안 지출예산의 실질증가율을 0%로 묶겠다는 것이다. 엔히키 메이렐리스 새 재무장관은 며칠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 회견에서 이런 고강도 재정 긴축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브라질은 현재 국채 비율의 가파른 상승으로 재정 신뢰도가 낮아져 한때 잘나가던 신흥시장 경제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채의 신용부도스와프 가산금리가 연초보다는 낮아졌지만 비슷한 신용등급 국가와 비교할 때 여전히 높다. 긴축정책이 시행되면 상당기간 성장률 부진(지난해 -3.8% 기록, 올해 -3.8% 전망)이 이어질 수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 정부의 선택은 아무래도 극단적인 것 같다. 단기 대책이라면 모를까 장기 대책으로서는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재정의 유연성이 떨어져 경제 흐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재정 신뢰도는 브라질과 달리 국제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재정 수치를 두고 불확실성의 오명이 따라 붙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런 저력이 없으면 지금 추가경정예산 편성 얘기를 쉽게 꺼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역대 정부가 재정을 건전하게 꾸리려고 나름대로 노력해온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4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4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하지만 정부의 요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추경 편성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도 머뭇거리고 있어서다. 지금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도 인정했듯이 조선업 등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실업자가 늘어나고 지역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선업체가 많은 경남지역 실업률이 5월 들어 급등세를 보여 이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성장세가 탄력을 잃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8%로, 한국개발연구원은 3.0%에서 2.6%로 낮췄다. 실제 성장률이 한은 추정 잠재성장률(3.0~3.2%)을 밑돌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달 초 기준금리를 1.25%로 내린 뒤 “추경 여부는 정부가 판단할 몫이다. … (하지만) 통화정책만으로 지금의 저성장 (추세와) 성장잠재력 약화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여야 정당은 추경 편성을 요구하거나 편성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재원 조달 여건도 추경을 돕고 있다. 올해 4월까지 걷힌 국세가 지난해보다 18조원이나 늘어나는 등 세수가 호조다. 또한 기준금리 인하로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이자 부담이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 정부가 추경 편성의 확정을 미루는 것은 제 발이 저리기 때문인 듯하다. 추경 편성은 정부의 경제 운용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책임 추궁이 따를 수 있다. 정부로서는 어찌됐든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계속되면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로잡을 때다.

이참에 국가재정법을 손질하면 좋겠다. 이 법이 추경을 크게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를 빼곤 편성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재정이 경제 현실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요건을 적당히 완화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개정 필요성은 높다.

아울러 정부가 편향된 재정운용의 도그마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정부는 지난 4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2020년까지 총지출 증가율을 총수입 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하기로 했다. 경기가 나빠질 우려가 있을 때 재정이 적극적 구실을 하거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지출 억제에 초점을 맞춘 재정운용은 곤란하다. 세금을 흥청망청 쓰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세수 확대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제고해야 한다. 부자 감세 등으로 낮아진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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