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 주최 공청회서 ‘의무지출 제도 도입’ 주장 나와
재벌 소유 재단들, 기부 주식으로 오너 지배력 확대에만 써
야권에선 기부 주식 의결권 제한 주장 봇물
재벌 소유 재단들, 기부 주식으로 오너 지배력 확대에만 써
야권에선 기부 주식 의결권 제한 주장 봇물
“공익법인이 주식을 기부받았을 경우, 반드시 이를 팔아서 공익 사업에 쓰도록 해야 한다.”
윤지현 서울대 교수(법학)는 공익법인을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하려면 ‘기부 재산의 의무지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ㄱ공익재단이 ㄴ기업으로부터 주식 100억원 어치를 기부받았다면, 매년 주식을 일정 비율로 팔아서 공익 사업에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 아래선 공익재단이 기부받은 주식을 팔아 쓰지 않아도 된다. 배당수익의 70~80%를 공익 사업에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공익재단은 주식을 기부받을 때 해당 기업 지분의 5~10%까지 상속·증여세를 면제받는 큰 혜택도 누린다.
이러다 보니 재벌 그룹이 공익재단을 만들어 계열사 주식을 기부한 뒤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나 상속·증여세 회피의 통로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경제개혁연구소 자료를 보면, 2014년 현재 재벌그룹이 보유한 공익재단 161곳은 2007~2014년 사이에 기부받은 계열사 주식을 팔아 공익사업에 쓴 사례가 없다.
이에 윤 교수는 22일 국책연구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주최한 ‘공익법인제도 개선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발제자로 나서 의무지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제도는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외국에선 이미 운영 중이다. 미국의 공익재단은 기부받은 재산을 매년 5%씩 공익 사업에 써야 한다.
통상 정부는 국책연구원이 주최한 공청회 등을 통해 향후 제도 개선의 밑그림을 드러낸다. 이를 의식한 듯 윤 교수는 “발제 내용과 정부의 의견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으나,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이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이런 제안은 재벌 그룹의 공익재단 악용을 막기 위해 그간 시민사회나 정치권이 내놓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도 악용 차단에 의지가 있지만, 기부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주식 출연 비과세 한도를 현행 5%에서 20%로 확대하되 출연 주식에 대해선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쪽은 “비과세 출연 한도를 높여 선의의 기부자가 세금폭탄을 피하도록 하고, 의결권을 제한해 재벌 그룹이 공익재단을 악용하는 것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런 야당의 구상에 대해선 “의결권만 없으면 공익 사업에 쓰지도 않을 주식을 공익 재단이 계속 보유해도 무방한 것인지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고 짚었다. 다만 “의결권을 제한하면 아마도 (재벌 그룹의) 주식 출연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에 공익재단 악용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는 충분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부 주식의 의결권 제한에 대해선 다소 긍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셈이다.
한편, 정부는 의견 수렴을 거쳐 다음달 말 발표할 예정인 세법 개정안에 공익법인제도 개선 방안을 담을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임재현 기재부 재산소비세정책관은 “현재 정부는 특정한 방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번 공청회를 계기로 폭넓은 사회적 토론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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