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경영
‘사회적 책임’ 내던진 옥시는
불매운동에 퇴출위기 내몰려
미 타이레놀 사건과 극명 대조
인권·노동·환경 등 가치 지켜야
사회책임 소비 일어나 ‘선순환’
‘사회적 책임’ 내던진 옥시는
불매운동에 퇴출위기 내몰려
미 타이레놀 사건과 극명 대조
인권·노동·환경 등 가치 지켜야
사회책임 소비 일어나 ‘선순환’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198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과 닮은 듯하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극명하게 대조되는 사건이다. 옥시는 사건을 덮으려고 했지만 타이레놀 제조사인 존슨앤존슨은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기업신조 ‘크레도’에 따라 즉각 사건 경위를 언론에 공개하고 미국 전역에서 유통중인 타이레놀 전량을 수거했다. 크레도는 소비자, 종업원, 지역사회, 주주에 대한 책임의식과 행동지침을 담은 존슨앤존슨의 기업 가치이자 신조다. 존슨앤존슨의 솔직한 태도와 신속한 조처는 실추된 기업 이미지와 신뢰를 회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두 사건은 다른 어떤 가치와 충돌하더라도 타협할 수 없는 기업 고유의 가치체계를 세우고 실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지금 옥시 제품은 시민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국내시장에서 퇴출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가 제품 유해성을 밝힌 것은 2011년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때 옥시가 잘못을 시인하고 제품 수거에 나섰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도 한때 제3세계 공장의 열악한 노동·인권 문제로 큰 위기를 겪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에 나섰고, 나이키는 손상된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이키는 소홀한 공급망 관리를 재정비했고 위기를 기회로 돌려놓았다. 나이키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커졌고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에 대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은 사회책임경영의 본보기로 꼽히는 기업이다. 지이의 으뜸 원칙은 ‘규범 준수’(compliance)다. 하지만 혼자서만 법규를 준수하고 도덕성을 지킨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될까? 전 세계 공급망(Supply Chain) 체계에서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지이는 끊임없이 국외 협력업체들에게 기업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독려 수단은 교육이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선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 환경·안전·보건 규정을 무시하거나 노동법을 어긴 공급업체들은 지이와의 거래 단절을 각오해야 한다. 실제로 지이는 지난 10여년간 규범을 지키지 못한 해외 공급망 수백곳과의 거래를 끊어버렸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책임경영을 강조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어났다. 윤리헌장이나 사회책임헌장을 제정한 데서 나아가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투명경영위원회와 윤리위원회를 발족시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자 하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이런 움직임은 현행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기구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업들은 사회공헌 활동에서 양적·질적으로 적잖은 성장을 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펴낸 ‘2015 기업·기업재단의 사회공헌백서’를 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의 사회공헌 지출 규모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는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준섭 전경련 사회본부 선임조사역은 “세전이익에 견주면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는데 이는 세계 경제 한파라는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꾸준히 펼쳐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에서 사회공헌의 지출 규모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양보다는 질적인 면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점차 일회성 지원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에스케이(SK) 프로보노(임직원 재능 기부), 현대자동차 이지무브(장애인 이동 불편 해소), 포스코의 사회적협동조합 카페오아시아(다문화여성 자립 지원)는 한 번 돕고 마는 일시적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소외계층의 자립을 돕는 활동이다. 삼성물산의 ‘주니어 건설아카데미’(건설업 직업 체험 교육)와 씨제이(CJ)푸드빌의 ‘꿈★은 이루어진다’(제빵사·바리스타 양성) 등은 각 기업의 특색을 살리고 임직원의 전문지식이나 경험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이밖에 2003년 나눔경영을 선포한 삼성그룹은 전국 사업장의 107개 자원봉사센터, 4700여개 봉사팀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엘지(LG)그룹은 의인상 제정, 저신장 어린이 성장호르몬제 지원, 다문화학교 운영 등의 공익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때로는 사회책임경영이 기업의 필요나 선택에 따라 이뤄져 불법행위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가리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선과 기부의 이면에는 거래업체에 대한 갑질 횡포 같은 사회 문제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런 논란은 사회책임경영을 공표한 기업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는 사회책임경영의 실천이 중요한 때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고유의 가치체계를 내재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소비자도 사회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회책임 소비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김영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대표(경북대 명예교수)는 “사회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기업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책임 소비와 사회책임 투자가 일어나 사회책임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