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케냐는 모바일 금융 강국이다. 국민 네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모바일 금융 거래를 한다. 케냐의 전체 인구가 4500만명인데 모바일 뱅킹 이용자는 1200만명에 이르며, 하루 평균 거래 규모도 680만건이나 된다. 모바일 뱅킹은 이제 런던, 뉴욕, 서울 같은 메트로폴리탄 시민의 독점물이 아니란 얘기다.
케냐에서 모바일 금융이 급속도로 성장한 배경은 역설적이다. 경제 수준도 떨어지고 인구밀도도 낮아서 은행 점포를 개설하기엔 영 수지타산이 안 맞았던 게 모바일 뱅킹 확산의 출발점이 됐다. 케냐의 인구는 4500만명으로 우리(5100만명)보다 약간 적지만, 국토 면적은 58만㎢로 우리(10만㎢)의 6배나 된다. 게다가 경제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우리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은행의 불모지에서 모바일 금융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선 은행 계좌 개설률보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훨씬 높다. 아프리카에서 은행 계좌를 튼 이들은 24%에 불과하지만, 휴대전화 보급률은 80%에 이른다. 이 틈을 통신사가 파고들었다. 케냐의 이동통신사업자 사파리콤은 2007년 모바일 금융 거래 시스템인 ‘엠페사’(M-PESA)를 선보였다. 엠페사는 동네 구멍가게 등을 통신사가 가맹점으로 확보하고, 소비자가 가맹점에 현금을 내면 휴대전화 번호 계정으로 돈이 입금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소비자가 휴대전화로 엠페사에 접속한 뒤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 송금하면 문자메시지가 상대방에게 전송되고, 돈을 받은 이들은 메시지를 영수증처럼 활용해 근처 가맹점에서 현금을 찾기도 한다. 이처럼 모바일 금융 시스템은 기존 금융의 미개척지로 뻗어나가며 전세계 경제의 모세혈관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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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유럽·미국까지 확산
‘손안의 은행’이라 불리는 모바일 금융 시장의 급성장은 케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세계적인 ‘대세’다. 지역도 빈부도 가리지 않는다. 방식만 다를 뿐 모바일 금융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 중이다. 특히 신흥국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 케냐에서 모바일 뱅킹의 성공적 정착을 지켜본 보다폰 등 글로벌 이동통신사들은 탄자니아와 콩고, 가봉 등 아프리카 나라들에 진출해 비슷한 방식으로 모바일 금융 시장을 키우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설명을 들어보면 카메룬, 탄자니아, 우간다 등 여러 아프리카 나라에서 이미 모바일 계좌 수가 은행 계좌 수보다 많아졌다. 모바일 금융 거래를 활용하는 국가는 아프리카에만 56곳에 이른다.
최근에는 남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 인도 등도 모바일 뱅킹의 주요 성장 무대로 주목받는다. 은행 접근성이 떨어지고 계좌 개설률이 떨어지기는 아프리카와 사정이 비슷한 곳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휴대전화는 대부분 들고 다닌다. 금융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아프리카 및 남미의 모바일 금융 현황과 시사점’ 자료를 보면 남미의 파라과이나 과테말라 등에서는 저소득 지역을 중심으로 엠페사와 비슷한 형태의 ‘티고 머니’가 확산되는 등 모바일 금융 서비스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도 모바일 금융의 성장은 다르지 않다. 이동통신사보다는 전통적인 대형 은행이 주도해 모바일 뱅킹 시장의 덩치를 키우고 있는 게 다를 뿐이다. 실제 미국 경영컨설팅 회사인 베인앤컴퍼니가 2014년 제이피모건, 뱅크 오브 아메리카, 웰스 파고 등 미국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모바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한 건수가 전체의 35%로 피시 뱅킹(32%)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거래(17%)를 추월했다. 세계 22개국으로 분석 범위를 넓혀보아도, 미국뿐 아니라 일본·벨기에·캐나다 등 13개 나라에서 모바일 뱅킹이 다른 채널을 통한 업무 처리를 압도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1600년대에 설립된 ‘시 호어 앤 코퍼레이션’ 등 전통적으로 대면 서비스를 중시하던 영국 등의 프라이빗뱅크들도 최근 들어서는 모바일 뱅킹 앱을 계획하는 등 모바일에 신경을 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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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모바일 덩치 3년 만에 2~3배로
우리도 모바일 금융에 들이는 공은 다르지 않다. 시중은행들은 모바일 뱅킹 주도권 장악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국내 모바일 뱅킹 등록자 수(은행별 중복 집계)는 2012년 3709만명에서 지난해에는 7656만명으로 늘었다. 3년 사이 2.1배가량 덩치가 불어난 셈이다. 모바일 뱅킹 거래액은 더 빠르게 늘어서, 같은 기간에 2.6배로 증가했다. 2013년엔 하루 평균 거래액이 9615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엔 2조4962억원이나 된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K)뱅크 준비 법인이 지난 5월21일부터 일주일 동안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에서도 최근 정기 예·적금 가입 통로로 피시(13.9%)보다 모바일(19.3%)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선호도가 크게 높다.
이러다 보니 시중은행들은 본점 게양대에 태극기, 은행 깃발과 함께 ‘모바일 뱅크’의 로고나 상징물을 내거는 등 영업 중심축의 대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내세워 별도 브랜드로 독립시킨 뒤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광고 모델도 초호화다. 각 은행이 내세우는 광고 모델들은 소녀시대 써니(신한)나 방송인 유재석(우리), 걸그룹 아이오아이(I.O.I·KB국민은행) 등이다.
시중은행 가운데 먼저 모바일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곳은 우리은행이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5월 모바일 전문 은행인 ‘위비뱅크’를 선보였다. 중금리 대출 등 모바일 특화 상품을 앞세운 위비뱅크는 1년 만에 모바일 신용대출 실적을 1200억원가량 올리는 등 비교적 안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자체 모바일 메신저인 ‘위비톡’이나 모바일에서 단체 대화나 회비 관리 등 모임 기능을 지원하는 ‘위비클럽’ 등의 연계 서비스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위비톡 등과 연계해 우대 금리를 주는 예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12월 ‘써니뱅크’를 출시하면서 모바일 뱅크 경쟁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신한은행은 모바일 전용 자동차 대출 상품인 ‘써니 마이카 대출’ 등 모바일 특화 상품을 선보였다. 지난 2월 선보인 써니 마이카 대출은 지난달에 잔액이 1000억원을 넘어섰을 정도로 이용자가 많다. 케이비국민은행은 지난달 28일 ‘리브뱅크’를 내놓고 일반적인 은행 업무를 모바일에서 처리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일정 관리와 경조사비 보내기 등의 기능을 넣어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강조했다. 이밖에 케이이비(KEB)하나은행과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 등도 각각 ‘원큐뱅크’와 ‘아이원뱅크’ 등을 활용해 모바일 시장에 뛰어들었고, 부산은행이 ‘썸뱅크’를 내놓는 등 지방 은행들도 경쟁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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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점포 활용과 글로벌 진출이 화두
모바일 금융 시장 확대는 다른 고민거리도 던져준다. 온라인 거래가 늘면서 오프라인 점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가 은행들한테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점포 하나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연간 평균 3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창구 이용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일부 지방 점포에선 고령층의 공과금 납부나 송금 등을 빼면 창구에서의 금융상품 가입이나 대출 등의 금융 거래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털어놓는다. 결국 은행들은 전체 점포 수를 축소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점포 수는 2012년 4720곳에서 지난해에는 4311곳으로 9% 줄었다. 영업범위가 겹치거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를 폐쇄하고 희망퇴직 등으로 인력을 줄인 결과다.
그러나 점포 폐쇄와 인력 감축은 짧은 시간 안에 단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은행들은 최근 고심 끝에 ‘점포의 대변신’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은행은 최근 서울 동부이촌동과 잠실 롯데월드몰에 이종 업종과 손잡고 복합점포를 선보였다. 각각 카페와 도넛 전문점 안에 은행 창구를 들여놓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전혀 다른 두 업종이 한데 모여서 내는 시너지 효과로 점포 방문자가 늘고 영업기회가 증가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작용했다.
은행의 미래 고객인 젊은층을 끌어들이고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거점으로 점포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양대, 숙명여대 등 대학 근처 점포를 대학생 특화 지점으로 만들어 무료로 세미나와 스터디 등을 할 수 있도록 꾸민 케이비국민은행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나은행이 서울 홍익대 앞 서교동 지점 안팎을 한때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로 꾸며 소비자 관심을 유도한 것도 점포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에서 나온 결과다.
하지만 시장 평가는 아직 물음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소비자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점포 활용 문제는 모바일 뱅크의 성장과 함께 은행들이 꾸준히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런 이중의 부담에도 은행들이 모바일 뱅크로 사업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은 모바일 금융의 수익 창출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모바일 뱅킹을 자주 이용하는 이들은 평균적으로 은행에 가입한 금융상품이 많고, 서비스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짚었다. 아직 시장이 완성되지 않아 경쟁사 고객을 끌어올 여지가 큰데다 다양한 상품 판매에 나설 수 있어 수익성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외 진출 기회도 시중은행들이 염두에 두는 지점이다. 초저금리 등으로 국내 경영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국외 진출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이미 우리은행은 위비뱅크를 앞세워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브라질, 인도 등에 진출했다. 신한은행의 써니뱅크도 베트남 시장 등을 개척 중이다. 이들은 현지어 서비스는 물론 현지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류 콘텐츠를 모바일 뱅크에 장착한 뒤 한창 성장하는 신흥국 모바일 금융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