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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냉동식품, ‘30년 편견’ 깨고 질주하다

등록 2016-07-24 18:37수정 2016-07-24 21:54

일찍이 냉동식품 시장이 요즘처럼 뜨거운 적이 없었다.

2013년 12월 첫선을 보인 씨제이(CJ)제일제당의 프리미엄 냉동만두 ‘비비고 왕교자’는 출시 30개월 만에 5000만봉(누적매출 1500억원)이 팔리는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30여년 냉동만두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경쟁사들도 잇따라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하면서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해온 냉동만두 시장 규모는 2013년 3191억원에서 지난해 3669억원으로 15%나 성장했다.

냉동식품 발달 크게 처지는 한국
저가 제품 중심으로 소비자 불신 키워
2004년 ‘쓰레기만두 파동’으로 치명타
시장규모 6천억원, 일본의 10분의 1 수준

생산만큼 운송·보관 등 유통이 중요
연료 아끼려 트럭 냉동기 끄던 시절도
외국과 달리 냉동보다 냉장 진열대 많아
“진열 공간 부족, 다양한 제품 개발 한계”

최근 고급원료 사용 프리미엄 제품 등장
CJ제일제당 비비고, 이마트 피코크 앞장
“냉장?상온보다 냉동제품이 맛있는 게 당연”
조리, 급속냉동, 포장 기술 빠르게 발전

만두뿐이 아니다. 이마트의 피코크 낙지볶음밥, 풀무원의 현미취나물솥밥, 오뚜기의 불닭철판볶음밥, 씨제이제일제당의 비비고 곤드레나물밥, 깍두기볶음밥 등 주요 식품기업들이 최근 출시한 냉동밥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 반응도 뜨겁다. 여느 식품기업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간편식품을 피코크라는 브랜드로 내놓은 이마트의 올 상반기 매출 상위 5개 간편가정식(피코크 육개장·새우볶음밥·초마짬뽕·치즈돈까스·고구마핫도그) 가운데 육개장을 제외한 4개가 냉동식품이다.

씨제이제일제당 인천공장에서 남동규 생산팀장(왼쪽)이 냉동만두를 놓고 직원과 얘기하고 있다.
씨제이제일제당 인천공장에서 남동규 생산팀장(왼쪽)이 냉동만두를 놓고 직원과 얘기하고 있다.
씨제이제일제당이 지난달 출시한 냉동 양식 간편식 ‘고메 함박스테이크’와 ‘고메 미트볼’은 한 달 만에 15억원어치가 팔려 비비고 왕교자의 첫달 기록을 경신했다. 씨제이제일제당 인천공장 남동규 냉동식품생산팀장은 “지난해 한 차례 생산라인을 증설했고, 올해 또다시 증설 작업을 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씩 주말까지 가동하는데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간편식품 시장은 오뚜기의 ‘3분요리’ 시리즈와 씨제이제일제당의 ‘햇반’으로 대표되는 상온제품이 주를 이뤘고, 우동, 짜장면, 파스타 등 일부 냉장제품이 한쪽에서 조금씩 시장을 키워왔다. 냉동식품은 절반가량이 만두였고, 미니돈가스나 동그랑땡 등 반찬용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했다. 한 끼 식사를 책임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구색이었다.

집집마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보급된 나라치고 우리나라처럼 냉동 간편식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를 보면, 국내 냉동식품 시장 규모는 6600억원(2014년 기준)이다. 냉동식품이 가장 발달한 미국의 시장 규모는 42조원이고, 일본은 6조7000억원으로 우리나라의 10배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냉동 간편식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 피코크 브랜드를 총괄하는 이마트 김일환 상무는 환경적인 요인을 꼽았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냉동식품이 잘 안 팔리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나라가 좁아서 야채나 먹을 수 있는 게 가까이에 많으니까 유난히 싱싱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냉동을 기피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1992년 씨제이제일제당 식품연구소에 입사한 이래 23년간 냉동식품 개발에만 매진해온 김진현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 냉동식품 산업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산업 초창기부터 30여년간 값싼 제품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됐고, 그런 저가 제품들 때문에 소비자들이 냉동식품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19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값싼 원료를 사용했다. 원료가 나쁘니까 맛을 내려고 조미료 등 첨가물을 많이 넣었다. 또 대부분의 원료가 곱게 갈아져 있었다. 그러니 소비자들은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품 표시사항에는 돼지고기라고 적혀 있는데 정말 돼지고기가 맞는지 신뢰할 수 없고, 유통기한은 6개월에서 9개월까지 되니까 방부제가 들어갔을 거라고 의심하게 됐다. 그래서 냉동식품 전반의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2004년 ‘쓰레기만두 파동’은 치명적이었다. 이 사건은 잘못된 경찰 수사,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선정적인 보도에 열중한 언론, 여론에 떠밀려 엉터리 조사를 한 정부 당국이 결합해 값싼 자투리 야채가 들어간 만두를 쓰레기만두로 둔갑시킨 사건이었다는 게 곧 드러났다. 하지만 이미 소비자들의 불안과 불신은 극도로 높아졌고, 여러 식품 제조업체들은 결백이 입증됐는데도 파산했다.

이런 역사를 알고 나면 냉동식품 고급화에 앞장서는 비비고 왕교자의 만두소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왕교자는 곱게 간 돼지고기가 아니라 굵직굵직하게 썬 돼지고기를 사용한다. 부추, 대파, 당면도 큼직하게 다졌다. 맛도 맛이지만 소비자들이 눈으로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확인하게 해 제품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는 전략이 담긴 것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도투락 만두는 1980년대 초 우리나라 냉동식품 시장의 초창기를 이끈 제품이다. 도투락은 해태에 판매를 맡겼는데, 아이스크림 시장의 강자 해태가 아니라면 냉동만두를 소비자들한테 전달할 방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냉동식품 시장에서 유통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진현 선임연구원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냉동트럭 기사들이 휘발유를 아끼려고 공장에서 제품을 실을 땐 냉동기를 켜뒀다가 실제 운행할 때는 끄고 다니는 일이 잦았다. 그것도 냉동식품의 품질을 낮춘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냉동식품의 핵심 기술은 영하 40℃ 급속동결이다. 요즘에는 방금 쪄내 김이 나는 만두를 완전히 냉동시키는 데까지 15분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기술이 발전했다. 급속동결을 하지 않고 천천히 얼리면 식품 속에 작은 분자로 존재하는 수분이 서로 결합하면서 얼음 덩어리가 형성된다. 그러면 얼음 덩어리가 식품의 원래 조직을 파괴한다. 또 해동할 때 얼음 덩어리가 녹아 물로 빠져나오면서 제품 사이에 빈 공간이 생겨 식감이 나빠진다. 냉동트럭이 냉동기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포장 안에 성에가 잔뜩 끼게 되고, 하나씩 떨어져 있어야 하는 만두가 서로 단단하게 엉겨붙는다.

지금은 냉동트럭마다 실시간으로 온도를 기록하는 타코미터가 장착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대형마트나 편의점 물류센터에서는 냉동제품을 받을 때 냉동트럭의 타코미터 기록을 함께 제출받는다. 운송 과정에서 온도 변화가 발생한 트럭에 실린 제품은 아예 받지 않는다.

매장의 냉동고도 발전했다. 과거에는 위쪽에 문이 달린 허리 높이의 냉동고가 대부분이었다. 어떤 제품이 들어있는지 소비자들에게 잘 보이지도 않았고, 위에서부터 제품을 꺼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래쪽 제품은 한참 동안 팔리지 않기 일쑤였다. 요즘 대형마트나 편의점의 냉동고는 대부분 어른 키보다 큰 높이에 투명한 문이 앞쪽에 달린 형태라서 제품을 보기 좋게 진열할 수 있다. 또 매장 운영자는 냉동고 뒤쪽에 달린 문으로 제품을 채워넣고, 소비자는 앞쪽에서 제품을 빼가기 때문에 먼저 입고된 제품이 먼저 팔리는 ‘선입선출’이 잘 지켜진다.

하지만 냉동식품 제조업체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냉동 진열대가 부족하다. 우리나라 대형마트들은 냉장 진열대가 냉동 진열대보다 훨씬 많다. 미국의 경우는 정반대다. 씨제이 김진현 선임연구원은 “제품을 진열할 수 있는 면적이 작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신제품 개발을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마트 김일환 상무는 “우리나라 대형마트가 외국에 비해 냉동 진열대 면적이 최소 30%는 적다. 소비자들이 냉동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도 물류가 훨씬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냉동 대신 상온 제품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의 간편식이 대부분 냉동식품이고,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냉동식품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저 없이 ‘냉동식품이 더 맛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냉동식품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 사로잡혀온 소비자라면 당혹스러울 만한 얘기다.

요리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요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프라이팬이나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 것이다. 재료마다 적절한 조리 시간과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조리하면 재료 각각의 맛을 살리지 못한다. 상온이나 냉장 간편식은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포장 단계에서 높은 온도에서 긴 시간 동안 열을 가해 멸균 상태를 만든다. 업계에서는 이 공정을 ‘레토르트’라고 한다. 앞선 단계에서 아무리 정성 들여 맛있게 만들었어도 마지막 레토르트 공정에서 요리 초보자가 저지르는 실수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레토르트 제품 개발에 참여한 한 특급호텔 요리사는 “레토르트를 거치면 원래 만든 요리의 맛이 다 틀어진다. 그래서 레토르트 제품을 만들 때는 레토르트 이후의 맛이 최대한 원래 의도한 맛에 가까워지도록 조리법을 조금씩 조정하는 작업을 무수히 반복한다.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기는 한데, 레토르트를 거치지 않은 제품보다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하 40℃에서 급속동결돼 영하 18℃ 이하에서 유통되는 냉동식품은 레토르트 과정이 필요없다. 냉동 상태에서는 균이 증식할 수 없으니까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긴 유통기한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제이 김진현 선임연구원은 “냉장이나 상온 제품에 비해 냉동이 원래의 식감과 풍미를 가장 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업체들이 프리미엄 냉동제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소비자들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마트 김일환 상무는 “피코크는 처음부터 비용이 더 들더라도 맛을 우선하자고 해서 냉동제품을 적극 키웠다. 냉동밥, 냉동디저트, 냉동 중화요리까지 품질이 좋은 제품을 계속 만들다 보니까 냉동 쪽 매출이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맞벌이, 1인가구가 늘어나고 온라인을 통한 식품 구입이 증가하는 것도 냉동제품 성장의 중요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이마트 피코크 전체 매출 가운데 냉동제품 비중이 45.3%에 달했다.

씨제이 김진현 선임연구원은 “레스토랑에서 전문 요리사들이 조리하는 것과 똑같은 맛을 내기 위한 기술은 이미 많이 도입됐다. 예전에는 오븐으로 가열하거나 스팀으로 찌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최근에는 프라이팬에 지지듯이 조리하거나 불이 직접 닿는 직화구이까지 가능한 설비들이 도입됐다. 재료도 계속 좋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냉동식품 중에서도 100% 천연재료만 사용한 ‘올내추럴’, 유기농 재료만 사용한 ‘오가닉’ 제품들이 이미 등장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고급화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포장 기술도 진화중이다. 외국에서는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포장재가 뜨거워져 내용물의 겉면을 갈색이 나도록 바삭하게 구워주는 기술이 브리또 등에 이미 널리 적용되고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우리 식문화는 뜨거운 음식과 차가운 음식이 한 상에 올라오는데, 도시락 같은 제품을 전자레인지에서 해동하면 모든 음식이 뜨거워진다. 김치나 나물 같은 반찬은 뜨거워지면 안 된다. 한꺼번에 전자레인지에 넣어도 부분마다 전달되는 열을 다르게 하는 포장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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