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의 ‘합병과정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무력화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삼성물산과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모습 이종근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root@hani.co.k
삼성·현대차 등 계열사간 합병으로
보유지분 늘어 신규 순환출자 발생
공정위, 6개월 안에 신주 처분 명령
기재부 “추가 지분매입 아니다” 주장
공정위에 ‘가이드라인’서 제외 요구
‘채무보증 제한 규제’ 완화 지시도
전문가들 “재계 민원 해결 시도” 비판
보유지분 늘어 신규 순환출자 발생
공정위, 6개월 안에 신주 처분 명령
기재부 “추가 지분매입 아니다” 주장
공정위에 ‘가이드라인’서 제외 요구
‘채무보증 제한 규제’ 완화 지시도
전문가들 “재계 민원 해결 시도” 비판
#사례1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해 9월1일 기업 합병을 완료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기업 구조개편의 일환이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낮게 평가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표 대결까지 거쳤지만, 합병 작업은 문제없이 이뤄졌다. 그런데 오히려 합병 뒤에 동티가 났다. 삼성그룹 순환출자 고리에 포함돼 있던 삼성에스디아이(SDI)의 지분율에 변동이 생겼기 탡문이다. 삼성에스디아이는 합병 전 옛 삼성물산 지분 7.2%(400만주)와 옛 제일모직 지분 3.7%(500만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서 삼성에스디아이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900만주로 늘었다. 순환출자 고리가 그만큼 강화된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 규정에 따라 늘어난 500만주를 6개월 안에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사례2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도 지난해 7월1일 합병을 완료했다. 여기서도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보유하고 있던 하이스코 주식이 신주로 변환되면서, 현대차 보유 현대제철 주식이 917만주에서 1492만주로, 기아차의 보유 주식도 2305만주에서 2611만주로 늘었다. 공정위는 늘어난 881만주를 6개월 안에 처분하라고 결정했다.
두 사례는 공정위가 지난해 12월에 마련한 ‘합병 관련 순환출자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이 적용된 사례들이다. 재벌·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를 제한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대기업 계열사들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이 2014년 7월 시행됐다. 기존 순환출자 고리는 일단 그대로 인정하되 신규 순환출자는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계열사 간 합병에 따른 지배구조 변화를 어떻게 볼지는 매우 복잡한 문제로 남았다. 합병에 따라 순환출자 자체가 생겨나거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일종의 유권해석인 가이드라인을 만든 배경이다. 공정위는 재벌·대기업의 기업 승계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합병 등이 자주 일어날 수 있는데, 이를 풀어두면 순환출자 제한제도 자체가 흔들릴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은 논란 속에 만들어진 지 불과 5개월여 만에 백지화될 뻔했다. 경제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가 끼어들면서부터다. 기재부는 정부 내 협의 과정에서 “합병에 의한 순환출자 강화는 소멸회사의 주식 보유 대가로 신주를 배정받거나 구주를 취득하는 것뿐이며 추가적인 지분 매입이 없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재벌·대기업의 순환출자는 적은 지분을 통해 계열사에 대해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분율을 ‘뻥튀기’하는 도구로 이용됐다. 또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 등으로도 활용돼 왔다. 대기업이 구조조정을 빌미로 금지된 순환출자를 활용하는 일을 막기 위해 마련된 안전판을 기재부가 무력화하려 했던 셈이다. 기재부는 문어발식 확장과 선단식 경영에 따른 동반 부실화를 막기 위해 도입된 채무보증 제한 역시 도마에 올렸다.
공정위가 이런 기재부의 요청을 모두 거부하면서 애초 가이드라인은 유지됐다. 먼저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풀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사실상 제도를 형해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채무보증 제한 규제 완화 요구에 대해선 “채무보증 제한제도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며, 법 개정 사항으로 현실적으로 법 통과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논리로 맞섰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태스크포스 논의가 앞으로도 두고두고 정책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경제정책 전반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기재부 의견은 향후 경제정책에 반복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태스크포스 논의는 ‘1막1장’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대기업 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됐지만, 그 이후에도 원샷법 제정 등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편의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순환출자 제한제도 등 대기업 관련 규제가 기업 승계 과정 등에 걸림돌이 된다는 재계의 민원을 해결해주려는 시도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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