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잭슨홀 연례 심포지엄이 27일 막을 내렸다. 재닛 옐런 의장을 비롯한 연준 고위 간부들과 벤 버냉키 전 의장,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중앙은행 총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학 교수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미래의 통화정책을 주제로 사흘간 의견을 주고받았다. 특히 옐런 의장의 발언과 연준 고위 간부-연준 비판 단체의 만남에 눈길이 쏠렸다.
옐런이 관심을 끈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연준 수장인 그의 발언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옐런은 이에 부응하듯 기준금리 인상 여부와 관련해 “나는 연방기금 금리를 올릴 여건이 최근 몇달 간 강화됐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발표될 데이터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다른 연준 간부들의 발언이 전해지며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
옐런은 이어 여러 경제전문가들이 걱정하는 통화정책의 실효성 저하 문제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경제전문가들은 현재 기준금리가 0%대여서 경기침체가 닥치면 연준이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기준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거의 없어서다. 하지만 옐런은 “통화정책이 대부분의 조건에서 실효성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세계금융위기 이후 써온 양적완화와 선제적 안내 정책 등을 다시 해법으로 제시했다. 옐런은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미국 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지만 “통화정책이 계속 필수적인 몫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말도 했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물론, 옐런 의장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실망스럽다고 평가한 게 대표적이다. 서머스 전 장관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고용 개선에 부담을 주고 신흥시장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경기침체 대응방안과 관련해 연준이 자기만족에 빠질 위험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여기에는 통화정책의 새 틀을 적극 고민할 때라는 얘기가 담겨 있다.
어쨌든 옐런과 서머스 등의 이견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의견 차이는 통화정책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해결책을 모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 모습에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연준 간부들이 심포지엄 개막 당일 지역사회조직과 노동단체 등으로 꾸려진 페드업(Fed Up)이란 단체 회원들과 만난 것은 이례적이어서 화제가 됐다.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 등 11명의 연준 고위 인사가 심포지엄 정식 행사의 하나로 이런 시간을 가진 것이다. 페드업은 연준이 가공의 인플레이션 위협을 내세워 기준금리를 인상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해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일자리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이들은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경우 지금도 경기회복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페드업은 그러면서 연준 조직이 인종과 성, 산업(직업) 면에서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간부진이 백인 남성과 금융업계 이해 대변자 중심으로 꾸려져 주로 이들의 뜻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드업의 이런 비판은 민주당 상하원 의원 120여명으로 하여금 지난 5월 옐런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연준의 다양성을 추구하도록 촉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도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연준 간부들은 이날 연준이 펴고 있는 정책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흑인 등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연준 구성이 다양하지 못한 점에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페드업의 주장에 일정 부분 공감한 셈이다. 페드업 회원들은 2014년 11월 워싱턴 연준 본부에서 옐런 의장을 만나기도 했다.
물론. 페드업 회원들이 연준 고위 인사들과 자리를 함께한다고 해서 연준 정책이나 인적 구성이 곧바로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연준이 이들의 주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특히 연준이 개방적인 자세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연준 역시 대부분의 중앙은행들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폐쇄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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