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경제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이 총재는 국제신용평가회사인 피치 관계자들이 우리경제 위험요인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 가계부채, 인구고령화 문제를 거론했다고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구고령화는 어떻게 보면 미국 금리인상이나 가계부채보다 훨씬 대처하기 어려운 과제다.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최근 고령화 속도가 대단히 빠른 점을 감안하면 여러 가지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우리 정부도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러 가지를 감안하면 미흡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이 총재는 같은 달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에 대해서도 주목할 발언을 했다. 가계대출이 예년 수준을 웃도는 증가세를 지속해 금융안정 면에서 위험 증대 요인이 되고 있다며 “정부 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 여러 가지 조처를 내놨다. 요지는 대출심사를 좀더 엄격히 까다롭게 하자는 것인데 아직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가 이런저런 경제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다수 전직 수장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박승 전 총재를 빼곤 재임 당시 대체로 통화정책에 직접 관련된 사안이 아니면 언급을 자제했다. 때문에 이 총재 처신이 마뜩잖은 사람들도 없지 않다. 특히 정부 정책에 관해 잘잘못을 가리는 것을 두고는 한은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 총재의 이런 자세를 긍정적으로 본다. 적극적인 의견 개진은 생산적 토론을 이끌어 해법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많은 경제현상이 통화정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한은과 같은 기관이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신뢰할 만한 의견을 제시하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논란이 큰 사안일수록 전문적이면서 중립을 표방 하는 쪽의 판단을 들어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한은이 얼마만큼 중립적인지는 별개로 하고 말이다.
앞으로도 이 총재가 의견을 많이 내면 좋겠다. 그는 전에도 고용 안정과 소득불평등 확대, 구조개혁 필요성 등에 대해 눈길을 끄는 발언을 했다. 그는 5월30일 한은 국제콘퍼런스 개막연설에서 “가계소득의 원천이 되는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총수요 증대를 유도해 나가야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불평등 해소가 내수 진작과 인적자원 양성 등에 긴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2014년 6월13일 기자단 만찬) 당시 이 총재 얘기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이 큰 반향을 일으키던 때라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에 대해서도 틈나는 대로 강조하고 있다. 그의 언급들에 대해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제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넘기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물가 안정에 대한 이 총재 태도가 그것이다. 2013년 이후 줄곧 물가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도 이를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실린 발언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한은의 주된 설립 목적이 물가 안정인 점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다른 현안에 대한 언급과도 크게 대비가 된다.
이 총재는 목표 미달과 관련해 공급 쪽 요인이 커서 한은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며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7월14일 열린 물가안정목표제 운영상황에 대한 설명회 자리가 대표적이다. 유감 표명도 없이 옹색한 보이는 해명을 이어갔다. 지난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7월 당행이 저물가의 원인, 물가전망 경로, 향후 정책운영 방향 등을 충실히 설명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 이번 10월에(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설명회에서)는 일반 국민이 물가목표 이탈 시 합리적 정책대응, 중앙은행의 책임성 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자료 준비 등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발언이 나온 것도 무엇 때문이겠는가.
이 총재의 이런 모습이 이어지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자신의 소관 업무는 소홀히 한 채 남의 일에 관여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올지 모른다. 선의가 엉뚱한 결과를 낳으면 되겠는가.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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