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월 이상 실업자, OECD평균 34%인데 한국은 사실상 제로(0)
짧은 실업급여 기간 탓…‘구직활동하는 실업자’ 대열에서 자발적 이탈
짧은 실업급여 기간 탓…‘구직활동하는 실업자’ 대열에서 자발적 이탈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 수가 1년 전에 비해 6만7천명 늘어 19만3천명에 달했다. 현재의 실업자 분류 기준(구직활동 4주)이 확립된 1999년 6월 이후 전년 동월 대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장기실업자 증가는 경기회복이 더딜 뿐 아니라 우리 경제가 장기침체에 접어들고 있다는 증거로 읽힐 수 있다. 장기실업자는 2000년 이후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2011년 저점을 찍은 뒤부터 증가세로 돌아서, 올들어 13만3천명(8월까지 월평균), 전체 실업자 대비 12.5%에 육박한다. 특히 지난 8월엔 장기실업자의 비중이 전체 실업자의 19.4%에 이르렀다. 실업자 5명 중 1명은 장기실업자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실업자’란 실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6개월 넘도록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고용통계에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 ‘실직자’와 ‘미취업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장기실업의 시대…놀랍게도, 한국 1년이상 장기실업자는 제로(0)!
현재의 경기침체와 장기실업자 증가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HERI)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분석해보니, 지난해 오이시디 34개국 전체의 총 실업자 중에서 6개월 이상 실업자가 46.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2008년 이후 장기실업자의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아일랜드는 6개월 이상 실업상태에 있는 구직자가 전체 실업자의 72%에 이른다. 우리와 이웃한 일본도 전체 실업자의 절반이 장기실업자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장기실업자 비율(2016년 월평균 12.5%)은 멕시코 정도를 빼면 오이시디 가입국 중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장기실업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시장이 효율적이라는 뜻도 되지만, 반대로 우리나라의 장기실업 통계 수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과소집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떨쳐내기 어렵다.
【그림】(OECD 주요국의 장기실업자 비중(2015))에서도 나타나듯이, 장기실업자 비중이 높은 다른 오이시디 나라와 한국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12개월 이상’ 초장기 실업자의 규모에 있다. 12개월 이상 실업자가 전체 실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오이시디 평균은 34%에 이르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영(0)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실업자의 90% 가량이 6개월 미만의 단기실업자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공식 실업률은 3.6%로 오이시디 가입국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단기실업자만 보면 우리보다 공식 실업률이 높은 독일, 영국, 아일랜드 등보다 사정이 낫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구직활동을 좀더 오래 하는 것도 그럴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조건이 갖춰져 있어야만 가능하다. 불행하게도 그런 여건이 모든 구직자들에게 허락된 건 아니다. 실업급여를 받는 것조차 우리 사회에서는 까다로운 요건을 채워야 하고, 그래서 ‘특권’이다. 특히 청년층은 당장의 필요와 엉성한 고용안정망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도 전에 원치 않는 곳에 취업하는 일이 잦다. 물론 대개 그렇게 가는 일자리는 비정규직, 저임금, 단시간 일자리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 2014년 4월부터 시범집계하기 시작해 이듬해 1월부터 공식 발표되고 있는 <고용보조지표> 상의 ‘시간관련 추가취업 가능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데서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가 역대 최고로 늘어난 지난달 ‘시간관련 추가취업 가능자’(실제 취업시간이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을 희망하고, 추가 취업이 가능한 자)의 수는 56만9천명으로,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취업은 잦은 퇴사와 해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6개월 미만의 단기간 실업자 비중이 다른 오이시디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업급여기간(최대 8개월) 지나면 ‘실업자’로 간주할 정책적 필요 사라져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보통 6개월이고 길어봐야 8개월(10년 이상 고용보험 납부한 50세 이상자 또는 장애인인 경우)인 것 등을 감안하면 열심히 구직활동 중인 실업자라도 그 기간이 6개월이나 8개월을 넘을 경우 통계당국으로서는 그를 ‘실업자’로 간주할 정책적인 필요가 사실상 사라진다. 구직자 자신의 입장에서도 ‘실업자’로서의 정체성이 자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내 구직활동을 포기하기도 쉽다. 이렇게 되는 순간 그는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실업자가 아닌 사람이 된다. 우리나라의 3개월, 6개월, 1년 등 구직활동 기간별 실업자 통계가 그 자체로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통계청 관계자는 “12개월 이상 실업자 수의 경우 그 규모나 전체 실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만 오이디시 회원국 중에 유독 적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이 통계 수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별히 그 숫자가 적은 이유는 실업급여 같은 제도적 요인도 있을 수 있고, 한국 실업자의 구직활동 양상이나 노동시장 구조의 특성에서 비롯될 수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구심이 곧바로 정부 통계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이시디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를 살피다 보면, 과연 우리 정부가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나라별로 ‘기간별 실업자수’(unemployment by duration)를 보여주는 통계를 보자. 유독 우리나라만 2014년과 2015년치의 ’12개월 이상 실업자 수’ 항목이 공란으로 처리되어 있다.(의심되는 독자는 다음 링크에서 이를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기간별 실업자수’.)
오이시디의 이 ‘기간별 실업자 수’ 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오이시디에서 요구하는 ‘1개월 미만’ 실업자 수를 따로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용동향 설문조사가 “몇개월 이상 구직활동을 했는지”를 묻고 있으므로 구직기간 1개월 미만 실업자도 조사과정에서 구별해낼 수 있지만 정부는 이를 발표하지도 않고 오이시디에 제공하지도 않는다. 2007년 이후 이 수치를 내놓지 않는 오이시디 회원국은 대한민국뿐이다.
또,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는 꾸준히 발표되는 ‘12개월 이상 실업자’가 2014년 이후 오이시디 통계 데이터베이스에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특히 2014~15년의 12개월 이상 실업자가 ‘0’으로 처리되는 바람에 전체 실업자 수도 2014년엔 2천명, 2015년엔 4천명이 실제보다 줄어든 수치로 오이시디 데이터베이스에 잘못 등재되고 있다. 이 2천명 또는 4천명이 전체적인 통계오류 등에 따른 비체계적 오차가 아니라 12개월 이상 실업자만을 뺀 결과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통계청 쪽은 “국제기구에서 회원국들한테 자료를 요청하고 취합해 업로드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국내 통계포털에는 즉시 업데이트하는 데서 빚어지는 단순한 시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왜 2014년부터 유독 한국만 빈칸으로 돼 있는지에 대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답변은 되기 어렵다.
장기실업 대응, 정확하고 솔직한 현실 파악이 우선되어야
최근 고용지표를 통해 확인되는 장기실업자의 절대치 및 비중의 증가는 일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간 축적된 한국 경제의 제도적 문제점과 세계경제의 구조적 침체가 함께 발현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더구나 당분간 우리 경제의 상황이 반전될만한 호재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조선업 등에서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장기화할 가능성까지 짙어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현재의 추세는 당분간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즉 최근 장기실업 증가는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라는 얘기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특히 정부는 실업급여를 위시한 고용안전망 강화 요구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실업급여로는 구조조정 못한다’). 하지만 그 전에, 실업 장기화의 현황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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