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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성급한 장밋빛 전망이 부실 경기대책 낳는다

등록 2016-10-12 05:01수정 2016-10-12 09:20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 3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2017년 예산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 3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2017년 예산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심층분석] 단기 부양책 왜 반복되나?

일상화·유형화된 단기 부양
효과는 줄고 부작용은 커져
장밋빛 전망·보신주의 탓
장기 저성장 위험은 굳어져
일본 장기불황 20년 답습할까
정부의 단기 부양책 발표가 잦다. 지난 8월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이후 불과 두달 만에 부양책이 또 나왔다. 지난주 기획재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규모와 공기업 투자 확대, 중앙정부의 재정 집행률 제고 등을 뼈대로 한 10조원 규모로 성장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저성장 흐름은 더욱 굳어지고 있다. 미니 부양책은 왜 반복될까?

일상화된 단기부양책과 그 비용 단기 경기 관리를 위해 정부가 쓸 수 있는 부양 카드는 손에 꼽는다. 하반기에 쓸 재정을 상반기에 당겨쓰는 ‘재정 조기집행’, 불용 예산을 줄이는 ‘재정 집행률 제고’, 경제주체의 소비여력을 늘려주는 ‘소비세 감세’ 등이다.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대출·보증 확대나 공기업 투자 독려도 단기 부양책의 단골 메뉴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도 단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즐겨쓰는 정책에 속한다.

구조조정·신산업 지원 등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만큼이나 단기 경기 관리도 정부의 중요한 책무다. 단기 경기 관리가 부실하면 중장기 성장 여력도 타격을 입는다. 기업·가계 등 경제 주체의 심리가 얼어붙어 경기가 더 나빠지는 ‘이력 효과’ 탓이다. 단기 부양,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부양책이 수년째 일상화되고 있으며, 그 방식도 패턴화됐다는 데 있다.

최근 수년간 정부의 단기 부양책은 매년 이런 순서로 진행됐다. 재정 조기집행→소비세 감세 및 추경 편성→재정집행률 제고 및 공기업 투자 확대, 정부 주도 소비재 할인행사 순이다. 부양책은 경제주체에 예상 못했던 선물을 줘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목적인데,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부양책이 돼 버렸다. 예상된 선물은 그 감동이 덜 하듯이 예정된 부양책은 그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단기 부양책은 그 자체로 숨은 비용을 안고 있다. 재정 조기집행과 소비세 감세는 하반기 ‘재정 절벽’이나 감세 종료 뒤 ‘소비 절벽’을 낳는다. 2014년 하반기와 올해 초에 각각 재정 절벽과 소비 절벽을 한국 경제는 경험했다. 재정 집행률 제고나 지방자치단체 추경 확대 등은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낮추며, 정책금융 확대는 정책금융기관의 부실화와 기업 구조조정 지연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효과는 떨어지고 부작용은 커지는 모양새다.

오판이 낳은 ‘사생아’ “3.1로 쓰고 2.5로 읽는다.” 지난해 말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실질) 전망값(3.1%)을 내놓을 때 관가와 시장에 확산된 말이다. 정부의 경제 전망은 0.5%포인트 정도는 내려잡아 봐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의 경제 전망에 불신이 깊고 넓게 깔려 있다. 정부는 수년간 장밋빛 전망을 반복해왔다.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정부의 경제 전망은 실제 성장률을 크게 웃돌았다. 2015년 정부 전망치(3.8%)와 실제값(2.6%) 간의 차이는 무려 1.2%포인트나 됐다. 올해도 정부 애초 전망은 3.1%였으나, .2.7~2.8% 성장률로 마감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장밋빛 경제 전망은 단기 부양책 남발의 핵심 배경이다. 애초 매번 낙관적 전망대로 경기가 흘러가지 않자 뒤늦게 성장률을 끌어올리리기 위해 단기부양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 국회를 통과한 추경 예산을 편성한 것이나 지난주 발표된 미니 부양책도 모두 올해 성장률을 지난 7월의 정부 수정전망(2.8%)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은 장밋빛 전망에 있다. 여기엔 경제 전망을 하는 분석 도구의 낙후성 등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부분은 정부가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한 오판에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장기 저성장‘은 구조적인 현상이나, 정부는 이를 잠깐 스치고 지나갈 소나기로 매번 판단해왔다. 둑과 제방을 두텁게할 때 우산 하나 비옷 한 벌 사는 데 만족하며 곧 해가 뜰 것으로 착각했다는 뜻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기재부의 한 과장급 간부는 “단기 부양책은 경기 진폭을 줄이는 게 목적인데, 지나고 보니 최근 5~6년 간은 경기의 진폭 자체가 없던 시기였다. 구조적 위험을 간과했고 그 대응이 부실했다”고 토로했다.

물론 이런 오류는 한국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요국 정부나 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도 한국 정부와 똑같은 경제 전망의 ’상향 편의‘가 나타났다. 반짝 경기 회복을 위기 탈출로 오판해 더 깊은 수렁에 빠진 나라가 한 둘이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국내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2009~2010년 선진국에서 갑자기 증세와 지출 삭감 등 (재정) 긴축 정책으로 급선회를 한 것은 금세기의 큰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안에 정책 금리를 인상할 준비를 하고 있는 데 대해 “안이한 판단”이라며 강한 비판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오판과 그에 따른 단기 부양책 남발로 특징되는 정부 대응이 초래하는 위험은 장기 저성장 흐름 탈출 기회를 스스로 발로 걷어차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980년대말 부동산·주식시장 거품 붕괴 뒤 20년간 침체에 빠진 일본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일본은 거품 붕괴 직후 나타난 일시적 경기 반등을 위기 극복으로 오판해 정책 금리 인상 등 ‘위기 정상화 정책’을 폈다가 장기 불황 늪에 빠졌다. 한 민간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속적인 경제 전망 상향 편의나 반복되는 단기부양책 등은 20년 전 일본과 판박이”라며 “정책 당국자들이 장기 저성장이라는 구조적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지붕 딴 살림 “한 쪽은 거시 경제 상황에 둔감하고, 또다른 쪽은 (예산) 사업을 모른다.” 기재부 세제실의 한 국장은 이런 말을 한다. 거시 경제 상황이나 국제적 정책 흐름에는 무디면서 재정 건전성만 따지는 예산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 예산을 투입할지는 잘 모르면서 재정 총량 확대만 강조하는 경제정책국을 겨냥한 비판이다. 사실 이런 목소리는 기재부 내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의 지배구조 혹은 내부 문화도 단기 부양책 남발과 그 배경이 되는 장밋빛 전망이 반복되는 이유로 꼽힌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의 재정경제부와 기회예산처가 합쳐지며 오늘날 기재부가 탄생했다. 예산·세제·국내외 경제정책을 모두 아우르는 공룡부처이다 그러나 출범 10년이 다 되가지만, 서로 손발이 맞지 않다. 한 지붕 아래 딴 살림을 차린 모양새다.

이런 양상은 정부의 경제 정책이 어정쩡한 절충에 머무르거나 일관성을 유지 못하는 원인이다. 한 예로 지난 2014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경제사령탑을 맡았던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현 새누리당 의원)은 2014년엔 경제정책국에 힘을 실어주며 재정총량을 늘린 확장 예산안을, 2015년엔 거꾸로 예산실 의견을 들어 긴축 예산안을 국회에 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2017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기재부 내 두 부서의 의견을 절충한 성격이 짙다. 임기말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힘이 떨어진 것도 절충 예산이 나온 배경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큰 칼(예산)은 쓰지 않으면서 잔 칼(단기 부양책)만 자주 휘두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며 “대통령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모두 보신주의에 빠져 과감한 정책 변화는 기대조차 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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