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경제활력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며 한사코 거부하던 헌법 개정 논의에 스스로 물꼬를 트다니 말이다. 박 대통령의 지난 24일 예산안 시정연설은 아무리 살펴봐도 실망스럽다. 재임 기간에 경제가 좋아지는 것은 물건너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경제현실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진단과 처방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우선 박 대통령이 지금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자. “올해는 정부가 추진해온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는 해입니다. 그동안 국민들께서 힘을 모아주신 결과, 의미있는 성과들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창업국가로 변모하고 있으며, 우리 경제구조가 ‘역동적인 혁신경제’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 또한 4대부문 구조개혁의 성과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우리경제의 기초가 보다 튼튼해지고 있습니다. … 아울러,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내실있는 경제민주화 정책과 적극적인 복지 확대를 통해,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불균형을 해소해 나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중요한 정책들이 “의미있는 성과들을 많이” 내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박 대통령의 이런 진단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들여다보자. 박 대통령은 2년 전 새해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되면, 3년 후 우리경제의 모습은 잠재성장률이 4% 수준으로 높아지고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고용률 70% 달성으로 청년·여성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년에 이 목표를 달성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잠재성장률은 한은이 3.0~3.2%(2015~18년), 국회예산정책처가 2.9% 수준(2016~20년)으로 추정하고 있어 4%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1인당 국민소득은 여전히 3만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고용률 70% 달성은 불가능하다고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이미 인정했다. ‘역동적인 혁신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 또한 공감하기 어렵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으로 들린다. 4대부문 구조개혁과 경제민주화 등에 대한 박 대통령의 언급 역시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현실 진단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회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성과를 낸 게 없다며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14위에서 11위로 올라서고 국가신용등급이 주요 20개국 중 5위를 기록한 것 등은 박 대통령 업적이다. 그럼에도 이런 기록이 여러 난제가 뒤엉킨 우리경제의 잿빛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한다.
박 대통령은 자화자찬성 진단이 마음에 걸린 듯 “우리의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어렵습니다”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발언 기조를 확 바꿔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일부 정책의 변화 또는 몇개의 개혁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라며 개헌을 처방으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 얘기가 어색하게 흘러가지 않는가. 자신의 역점 정책들에서 성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한껏 자랑한 뒤 현행 헌법으로는 당면한 문제들을 푸는 데 한계가 있다니…. 역점 정책들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 아닌가.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히 대처해왔다면 쉽게 하기 어려운 얘기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나”라며 개헌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이제 와서 갑자기 개헌을 제기하면 ‘최순실 게이트’ 덮기 책략이란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개헌 논의의 장이 펼쳐지면 경제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그런 가운데서도 정부가 경제를 제대로 챙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그래도 정부 경제팀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비판이 많아 더 그렇다. 게다가 최순실 게이트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몰라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한편에서 나오는 위기론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 대통령의 남은 1년4개월이 걱정스럽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