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에 걸친 해운시장 침체와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6조5천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이 이뤄진다. 국내 선사가 가지고 있는 선박을 시장가격으로 인수한 뒤 다시 빌려주는 1조원 규모의 ‘한국선박회사’(가칭)도 처음으로 설립된다.
정부는 31일 서울청사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6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세계 해운시장이 당분간 어려움이 계속되겠지만 2~3년의 조정 기간을 거쳐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현재 새로운 선박을 확보하고 국적 선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경쟁력을 갖춰놔야, 세계 해운시장이 회복 국면에 접어들 때 성장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진해운이 사실상 경쟁력을 잃어버리면서 정부는 유일하게 남은 국적 선사인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내실을 키우겠다는 생각이다.
우선 국내 선사의 신규 선박 발주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말 발표한 ‘선박 신조 지원프로그램’(선박펀드) 규모를 애초 1조3천억원에서 2조6천억원으로 두 배 확대하기로 했다.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금융사, 선사 등이 자금을 모아 새로운 선박을 만들게 된다. 정부는 해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초대형·고효율 컨테이너선을 만드는데 펀드를 중점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새로 만든 선박은 펀드가 소유하고 선사에 빌려주는 구조가 될 것이다. 선사 입장에서는 좋은 배를 확보하면서도 재무적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선박 펀드 지원 대상을 컨테이너선뿐만 아니라 벌크·탱크 등으로 다양화해 중견 선사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정부는 재무구조가 취약한 선사가 보유한 선박을 인수하고 다시 빌려주는 ‘한국선박회사’(가칭)를 자본금 1조원 규모로 내년 상반기 설립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선박회사다. 출자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80%,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10%, 민간 10%의 비율로 이뤄진다. 선박회사는 선사의 선박을 시장가격으로 사고 장부가격과 차이가 날 경우 차액만큼 지분을 매입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현대상선의 선박이 시장가격이 5천억원, 장부가격은 1조원이라면 선박회사는 5천억을 주고 배를 사고 차액인 5천억원은 현대상선에 출자하는 방식이다. 박경철 해수부 해운물류국장은 “선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자금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인수대상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겠지만 경쟁력이 취약한 원양선사 컨테이너선을 우선 인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원양선사 컨테이너선은 현대상선만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선박펀드와 선박회사 정책은 현대상선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중고 선박을 매입한 뒤 재임대해주는 캠코의 선박펀드 규모도 애초 1조원에서 1조9천억원으로 늘리고, ‘글로벌 해양펀드’도 선사들이 항만터미널 매입 등 국내외 인프라 투자까지 지원하도록 개편하고 규모도 3천억에서 1조원으로 확대했다.
해운업계는 정부 정책이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한국선박회사는 독일 등 해외에서 이미 유사한 선례가 있다. 선사가 어려울 때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업계에서 오래전부터 건의했던 내용”이라며 “가장 실질적으로 해운업을 돕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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