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13년 부자증세가 미국 상위1%의 소득을 떨어뜨리거나 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공급경제학자들을 비롯해 보수진영에서 펴온 증세 반대론이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이들은 부자증세가 최상위계층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전체 경제에 손실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에마뉘엘 사에즈 버클리대학 교수는 3일 공평성장을 위한 워싱턴센터라는 두뇌집단의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부자증세가 타당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글은 불평등 연구로 이름난 사에즈 교수가 자신의 최신 논문(‘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기’)을 요약한 것이다. 2013년 부자증세로 소득세 최고세율은 35.0%에서 39.6%로, (실현)자본소득세와 배당세 최고세율은 15.0%에서 20.0%로 뛰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일 플로리다주의 한 대학에서 클린턴 후보 지지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에즈 교수 연구결과를 보면, 상위1%의 소득점유율은 국세청 신고소득을 기준으로 2011년 19.6%에서 2012년 22.8%로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런 연간 증가폭은 지난 25년 이래 가장 큰 것이다. 하지만 상위1% 점유율은 2013년 20.0%로 많이 떨어졌다.
사에즈 교수는 2012년과 2013년의 수치 급등락은 이례적인 것이라며, 부자증세를 앞두고 상위1%가 소득신고 시점을 조정한 데 따라 빚어진 일시적 현상으로 풀이했다. 2013년에 부자증세가 시행될 것이라는 사실이 2012년에 분명해지자, 낮은 세율을 적용받으려고 2013년 소득의 일부를 한해 앞서 2012년 소득으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사에즈 교수는 (실현)자본이득과 배당소득이 2012년 신고소득의 급증에 큰 몫을 한 게 이를 방증한다고 밝혔다. 자본이득과 배당소득은 신고 기간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것이 용이한 편이다. 사에즈 교수는 상위 1%가 2013년 소득 가운데 약 10%를 2012년 소득으로 옮겨 신고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1% 소득점유율은 2014년부터 오름세로 돌아서 2015년에는 다시 22.0%에 이르렀다. 부자증세 전의 상승세를 되찾은 것이다.
사에즈 교수는 이런 점유율 흐름이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러준다고 말했다. 첫째, 부자증세가 세수를 늘릴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이다. 이는 부자들이 단기가 아닌 중기에는 높아진 세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는 데서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2013년 부자증세만으로는 심각한 미국의 소득집중 현상을 억제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사에즈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자신의 1993년 클린턴 대통령 때의 증세 분석 결과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당시 증세도 상위1%가 소득 일부를 앞당겨 신고하도록 만들었으며 이들의 점유율이 199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상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울러 두 경우 모두 증세 직후에 하위 99%의 소득점유율이 높아진 것이 눈길을 끈다고 밝혔다. 이런 점들은 부자증세가 경제 전반에 해로운 영향을 주기는커녕 반대로 이로운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사에즈 교수는 덧붙였다.
부자증세는 오는 8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의 쟁점 가운데 하나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증세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감세를 내세우고 있다.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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