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확정된 군함 발주 계획을 새 일감으로 둔갑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엉성한 토대 위에 마련됐나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엉성한 토대 위에 마련됐나
6개월간 기획재정부 등 정부 관계부처가 머리를 맞대 내놓은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 엉성한 토대 위에 마련된 사실이 드러났다. 대우조선 등 수주난을 겪고 있는 조선사에 나랏돈을 투입해 새로 마련해주기로 한 일감 중 절반은 이미 2015년 말에 확정된 일감이었다.
6일 기획재정부 예산실 쪽 말을 들어보면, 내년과 그 이듬해인 2018년에 군함 관련 신규 발주 예산은 잡혀 있지 않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에만 군함 조기 발주 관련 예산(총사업비 3조3천억원)이 잡혀 있을 뿐 이외에 추가로 새로운 공공선박을 발주할 계획은 내년 예산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밝혔다. 내년 예산안은 9월 초 국회에 제출된 ‘2017년 예산 정부안’을 가리킨다. 이미 발주했거나 2016년 추경 예산에서 신규 발주키로 한 선박에 대한 ‘계속 사업비’만 2017년 예산안과 2018년 예산 계획에 잡혀 있다는 뜻이다.
이런 설명은 지난달 31일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하 방안)에 담긴 내용과 큰 차이가 있다. 이 방안에는 2016년 추경 예산부터 2018년 본예산까지 신규 발주를 위해 잡혀 있는 공공선박의 총사업비는 7조4862억원이며, 이 중 군함 관련 총사업비는 6조6700억원으로 돼 있다. 군함 사업비에서만 3조원 남짓 ‘구멍’이 있는 셈이다.
이런 차이는 신규 발주키로 한 공공선박 중 가장 규모가 큰 군함 발주 총사업비가 부풀려졌기 때문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방안’에는 2016년 추경예산부터 2018년 예산까지 잡혀 있는 신규 발주 군함 총 사업비 6조6700억원 중 3조4천억원은 2016년 예산에 반영된 ‘장보고3 배치2’ 관련 총사업비였다. 2016년 예산은 2015년 9월에 정부안이 확정돼 국회에 제출된 바 있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장보고3 배치2 발주 계획은 이미 1년여 전에 확정돼 있던 사업인데, 왜 이번 방안에 신규 발주 계획으로 이 사업도 포함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실제 지난 7월19일 방위사업청은 장보고3 배치2 사업 관련 설계 사업(탐색 개발 사업) 본계약을 대우조선과 체결한 상태다. 이 군함은 모두 3대가 발주될 예정이며, 대당 총사업비는 1조1천억원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조선사의 수주난을 덜어주기 위해 신규 발주키로 한 선박 관련 예산은 지난 9월 국회를 통과한 2016년 추경 예산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이때 추가된 신규 발주 군함은 ‘울산급 배치3’·‘특수침투정’·‘고속상륙정(LSF-2)’이다. 기재부 쪽은 각 군함의 발주 대수 등 구체적인 규모는 ‘국가 기밀 사항’이란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 군함 발주와 관련한 총 사업비는 3조3천억원 안팎이라고 말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울산급 배치2 조기 발주와 관련해서 추경 예산에는 설계비만 약 110억원이 반영돼 있다. 이 군함의 정확한 총사업비는 내년 1월에 확정된다”고만 밝혔다.
군함 신규 발주 총사업비를 정부가 과다 산정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정부 내에서는 이와 관련 부처 간 책임 미루기만 한창이다. ‘방안’ 마련에 참여한 기재부 쪽 관계자는 “전체 방안 중 신규 발주 일감 관련 부분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마련했다. 정확한 산정 방식과 기준 등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밝혔다. 산업부 쪽은 “국방부 등 공공선박 발주 부처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취합해 전체 조기 발주 공공선박 총사업비를 산정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신규 발주 군함 총사업비의 엉터리 산정이 대우조선의 구조조정 계획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3조4천억원에 이르는 일감인 ‘장보고3 배치2’는 잠정적으로 대우조선 몫으로 돼 있었다. 이미 주기로 돼 있는 일감을 새로 주는 일감으로 간주하고 정부가 대우조선 구조조정 계획을 짰다는 뜻이다.
대우조선의 반기보고서를 보면, 올 상반기 대우조선의 신규 수주액은 944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의 과다 수주 추정액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대우조선에 3조원가량의 일감을 새로 마련해주든지, 아니면 기존에 세웠던 인력 감축이나 자산 매각 규모를 더 확대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셈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지난 10월31일 정부가 발표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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