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을 사실상 거둬들이면서 임종룡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거취가 불투명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인물이 경제부총리로 내정될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임 후보자의 신분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 또한 작지 않아 보인다. 지금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내세워 한편에서 그를 부총리로 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 후보자가 경제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고 금융위원장으로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살펴보고 싶다.
경제부총리 후보로 여전히 유력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8일 국무회의 장소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임 후보자는 지난 7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합동 금융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이 여리박빙(얇은 얼음을 밟듯 몹시 위험한 상태)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활력을 잃고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 경제” “(정부는) 현 상황을 위기수준으로 인식하고 대응할 것”이라는 언급도 했다. 2일 부총리 내정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는 “경제상황이 오랫동안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내외 불안요인까지 겹쳐 있다”고 밝혔다.
나는 임 후보자의 이런 진단에 큰 틀에서는 공감한다. 성장률이 3% 미만의 저성장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부동산과 가계부채 동향이 계속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어서다. 또한 몇몇 취약업종의 형편이 나아질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임 후보자의 ‘위기상황’ 인식에 단절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그가 이런 생각을 뚜렷이 밝힌 적은 거의 없다. 특히 “오랫동안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발언은 낯설다.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진 점을 고려하더라도 최근의 갑작스런 인식 변화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임 후보자의 현실진단이 튼실하지 못하며, 정부 경제팀 일원으로 자신이 펴온 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우리경제가 위기상황에 이르게 된 데에는 그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가 직간접적으로 관할해온 가계부채와 부동산, 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들여다보면 이런 지적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핵심을 건드리지 않은 채 미봉책에 기대다 보니 불안요소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조정의 경우 사회경제적 비용을 늘리고 가계부채와 부동산은 불씨를 키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임 후보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로 “가계부채 등 여러 리스크 요인이 생긴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를 바로잡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2일 간담회)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개선 노력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니 임 후보자가 금융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한 말이 온전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강한 수식어를 동원해가며 우리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말이다.
“우리 경제와 금융부문의 대내외 리스크 요인에 대해 분야별로, 상황에 맞게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현재의 상황에 단호한 각오로 긴장의 끈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을 것입니다 … 필요시에는 이미 마련된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시장안정화 조처를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즉시 시행할 것입니다 … 이런 때일수록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지원은 한 치의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금융시장 안정”은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절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임 후보자가 노동·금융·교육·공공 등 4대부문 구조개혁을 두고 “우리경제가 생존하고 근본적인 성장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라고 말한 것도 걸린다. 그동안에도 논란이 많았던 사안인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밀어붙인다면 사회갈등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임 후보자는 많은 장점을 지닌 것으로 알고 있다. 정책수립 경험이 적지 않은데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평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경제난국을 제대로 타개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무엇보다 촛불집회 등에서 드러난 민심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너무 군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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