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협박당해 보험드는 셈 쳤다”
이재용 경영권 승계 대가성 부인
일부 기업 “조은 취지라” “관례 따라”
이재용 경영권 승계 대가성 부인
일부 기업 “조은 취지라” “관례 따라”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면서, 재벌들이 정경유착 분야로도 수사가 확대되는 ‘최순실 게이트’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관련 기업들은 ‘우리도 피해자’라거나 ‘일반적 재단 출연인 줄 알았다’는 식의 ‘알리바이’를 내세우고 있다.
미르와 케이(K)스포츠재단 출연금 외에 별도로 최순실씨 쪽에 직접 돈을 보낸 삼성의 긴장감이 가장 크다. 지난 9월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 의혹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사실무근이라던 삼성은 이제 드러난 사실은 인정하면서 ‘피해자 모드’로 전환해 수사의 예봉을 피해가려 한다. 삼성은 4차례에 걸쳐 최순실씨 소유의 독일 회사에 280만유로(약 35억원)를 송금한 사실이 드러났다.
삼성은 지난해 7월께 최순실씨의 ‘존재’를 알았고, 돈을 뜯겼다는 입장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독일로 돈을 보낸 것은 지난해 7월 말이나 8월 초쯤 승마협회 박아무개 전 전무가 찾아와 최씨가 정권 실세라는 점을 내세워 지원을 제안하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뭘 해달라고 하기보다 보험 드는 셈 쳤다”고 밝혔다. 이런 해명은 대가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삼성은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합병 비율 불공정 논란에도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의 지지를 받는 등 정경유착 의혹에 휘말린 상태다. 하지만 최씨에게 돈을 준 것과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은 또 지난해 3월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된 것이 최씨 모녀 지원을 위한 것이라는 의혹도 부인한다. 삼성 관계자는 “한화에 화학·방위산업 계열사 네 개를 넘긴다는 내용의 빅딜을 2014년 11월 발표한 뒤 한화 쪽이 공식 계약 조건은 아니지만 승마협회를 맡아달라고 강하게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화 관계자는 “승마협회 내부의 이권 다툼 등의 문제가 복잡해 삼성에 맡아달라고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공주 승마’ 의혹을 제기한 것도 승마협회에서 손을 떼려고 한 요인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는 안 의원이 2014년 4월 정유라씨가 승마협회 등으로부터 특혜를 받는다고 폭로한 것을 말하는데, 한화와 삼성이 정씨 문제를 인식한 상태에서 승마협회장 자리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다른 재벌들은 재단 출연을 “좋은 뜻에서 했다”, “관례에 따랐다”고 주장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류 문화 확산과 비인기스포츠 지원 등에 나서겠다고 해 기업 규모별로 갹출했다는 것이다. 한 4대 그룹 임원은 “뒤에 최순실씨가 있는 줄 몰랐다. 당시 제안 취지는 좋은 것으로 받아들였다”며, 삼성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매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준조세 격으로 거둬왔고, 이번에도 관행적으로 재단에 출연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벌들이 불똥을 피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통상 대통령 면담 때 기업들은 ‘중점 추진사항’ 또는 ‘애로사항’을 청와대에 전달하는데, 여기에 민원성 내용이 들어있다면 뇌물 혐의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 독대가 흔치 않은 기회인데 총수들이 빈손으로 들어갔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재벌들이 특혜를 바라고 출연했을 가능성뿐 아니라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협조했을 가능성도 따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경우에 ‘포괄적 대가성’이 인정될 수도 있다.
이완 홍대선 김규원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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