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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행복은 화려한 경제 지표보다 일상의 터전서 느껴야”

등록 2016-11-21 10:40수정 2016-11-21 13:34

【둘쨋날 열릴 사회적경제 세션】

시장경제론 행복 늘리는 데 한계
지역 기반한 사회적 모델 찾아
시민행복공동체 선언문 채택 예정

충남 당진 백석올미영농조합
지역 특산품 매실로 한과사업
‘노인 행복공동체 마을’로 소문

성동구 ‘언더스탠드애비뉴’
서울숲 부근 청년 창업가들 지원
사회적 약자들 자립과 능력 발굴


2014년 7월 충남 당진에 있는 백석올미영농조합의 조합원 할머니들이 한과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백석올미영농조합 제공
2014년 7월 충남 당진에 있는 백석올미영농조합의 조합원 할머니들이 한과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백석올미영농조합 제공
충남 당진시 순성면 백석마을은 전국 어느 농촌과 다를 게 없는 동네였다. 다만 이 마을을 중심으로 면 곳곳에 10만여 그루의 매실나무가 있었다. 주민 대부분이 매실 경작을 하며 사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난 9월말 아프리카 가나의 협동조합 지도자들이 이 마을을 견학차 방문했다.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중국 등에서도 이미 다녀갔다. 마을 할머니들이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노년 행복공동체 마을’로 소문나면서 유명 방문지가 됐다. 제값을 못 받는 천덕꾸러기 매실이 마을에 천지이고, 노인들만 살고 있던 이 고적한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갑자기 행복공동체로 바뀐 걸까?

4년 전, 마을 이장·노인회장·부녀회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민도 이장도 회장도 대부분 60대 이상 할머니들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낼 사업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마을의 왕매실과 당진을 대표하는 해나루 쌀을 이용해 조청을 만들고 마을 안에 매실한과 공장까지 세워보기로 의기투합했다. 곧이어 ‘백석올미영농조합법인’을 세웠다. ‘올’은 한자로 으뜸을, ‘미’는 맛을 뜻한다. ‘최고의 맛’을 담은 전통 매실한과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였다. 당시 내세운 슬로건조차 ‘할매들의 반란’, ‘암탉이 크게 울면 마을이 번창한다’였다. 노인들이 외친 구호라고 믿기엔 언뜻 의심이 들 만큼 발랄했다. 지금도 이 영농조합이 생산하는 한과제품 상자에는 ‘할매들의 반란’이란 글귀가 선명하다. 할머니들이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반란은 ‘사회적 경제’라고 불리는, 다소 거창해 보이면서도 소박한 지역 공동체 사회경제모델이었다.

애초 매실한과 사업은 할머니 33명이 200만원씩 이 조합에 출자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처음엔 한과를 상품성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방법조차 제대로 몰랐다. 할머니 조합원 3명이 7개월간 매일 새벽 차를 타고 경기도 포천까지 가 밤늦게까지 한과전문인 교육과정을 밟았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한과사업은 큰 성공을 이뤘고, 동네 이름도 이제 ‘백석올미마을’로 통한다. 올해 매출액이 7억원에 이르고, 한번 이상 구매한 고객이 벌써 6500명에 달한다. 이 조합은 마을기업으로 성장한 뒤 2014년에는 정부가 인증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더 커졌다. 특히 한과를 만드는 재료는 모두 마을 안에서 생산된 것을 쓴다. 조합에서 일하는 노인은 정규직 20명으로, 한과 수요가 몰리는 명절 때는 40여명이 여기서 일한다. 마을 안 100여가구 중 58가구가 조합원(대부분 평균 75살 여성)이다. 원재료부터 인건비까지 모두 이 마을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역 선순환 경제’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김금순(67) 백석올미마을 대표는 오는 24일, 2016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 행사의 주요 발표자 중 한명이다. 올미마을의 생생한 경험 사례를 통해 ‘지역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삶터’를 주창한다. 이번 포럼의 둘째 날 오후 프로그램은 사회적 경제 세션으로 채워진다. 충남연구원과 전국 기초자치단체장들의 모임인 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가 함께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지역마다 펼치고 있는 주민행복 정책과 성과, 그 생생한 경험을 서로 나누고 배우는 자리다. 일본의 지역재생 사례도 발표된다. 일본의 르포작가인 후지요시 마사하루 <포브스 재팬> 부편집장이 후쿠이현 등 행복지수가 높은 일본의 지역재생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영국에서 오랫동안 사회혁신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김정원 스프레드아이 대표는 사회적 경제의 철학과 원리에 기반한 시민 중심의 공동체형 주택개발 및 도시재생 모델을 발표한다.

서울 성동구청이 사회적 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숲 부근에 조성한 ‘언더스탠드 애비뉴’의 모습. 성동구청 제공
서울 성동구청이 사회적 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숲 부근에 조성한 ‘언더스탠드 애비뉴’의 모습. 성동구청 제공
오직 이윤추구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극심한 양극화·실업·빈곤 등을 불가피하게 양산하고 있다. 영리 목적으로 작동하는 시장경제만으로는 지역공동체의 주민 행복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떠오고 있는 것이 지역에 기반한 사회적 경제 모델이다. 조직으로 보면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이 사회적 경제를 이끄는 큰 축을 이룬다. 취약계층에 대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제공, 지역공동체 재생과 지역순환경제 등이 사회적 경제가 추구하는 공동체적 가치다.

이날 사회적 경제 세션 참가자들은 “행복은 화려한 경제적 지표를 통해서보다는 각자 살아가는 일상의 삶의 터전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우리 동네에서 이웃들과 함께 누리는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정·시행 이후 9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는 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끌고 있다. ‘시장 및 영리’가 지배해온 한국의 사회경제 전반에 조금씩 혁신과 전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사회적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대량실업 이후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 사회서비스 일자리, 지역재생형·대안경제형 사회적 기업 등으로 점차 확산돼왔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및 판로 지원 아래 지역주민 스스로 이끌며 개척해가는 지역밀착형 사회적 경제 생태계는 주민 행복공동체의 기반이 된다.

이날 포럼에는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 김수현 서울연구원장, 강현수 충남연구원장, 황명선 논산시장,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 김홍장 당진시장,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 등이 발표·토론자로 나선다. 지역마다 주민참여형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온 생생한 정책과 체험담을 들려준다. 백석올미마을이 노인행복공동체라면 성동구 서울숲 부근에 있는 ‘언더스탠드 에비뉴’는 젊은이들의 행복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숲을 조성하고 남은 땅 4000여㎡에 컨테이너 116개를 활용해 연면적 3300㎡ 규모로 만든 공간이다. ‘낮은(Under) 자세로 서로를 이해(Understand)하고 자립(Stand)을 돕는다’는 뜻이다. 청년창업가 등에게 사무실 등으로 지원하는데 사회적 약자들의 끼와 잠재능력을 발굴하고 자립을 돕는다. 사회활동가·예술가는 물론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입주 임대료는 받지 않고, 월 20만원 이하의 관리비도 그곳에 취업한 소외계층이나 경력단절 여성들의 월급 지급에 쓰인다.

이러한 지역행복공동체 사례들이 발표되고 나면,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채인석 화성시장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행복공동체 선언문’이 채택될 예정이다. 올해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행사 이틀간 토론·발표·논의된 행복 관련 의제들을 바탕으로 지방정부 차원의 행복정책 실천을 선언하는 피날레 행사다. 포럼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모여 이 선언문을 발표한다.

이 선언문은 “국가 단위의 성장을 넘어 지역 단위의 더불어 행복을 추구한다”는 기조 아래 “맹목적인 성장 위주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 주민행복지표를 삶의 질을 판단하는 정책 목표로 삼는다”는 원칙을 표방할 예정이다. 지역별로 노동, 소득, 건강, 환경, 나이, 소득계층, 종사상 지위 등 각 분야와 영역에 걸쳐 주민 행복도와 삶의 질 만족도를 주기적으로 설문조사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된다. 지역주민의 행복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수치로 조사·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지역밀착형 맞춤형 행복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실행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또 주민행복을 위한 사회적 경제 육성방안으로 사회적 금융과 공공구매를 천명할 예정이다. 백석올미영농조합 같은 사회적 기업에 투자·융자·보증 등을 제공하는 사회적 금융 활동을 전개하고, 이런 사회적 경제 조직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구매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시민행복공동체 확산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필요한 예산·조직의 확보는 물론, 그 시행 성과를 매년 평가하는 시민행복공동체위원회 구성까지 논의될 예정이다.

김학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구예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교육연수생 yaerinre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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