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세일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11월25일)를 앞두고 선주문된 텔레비전 등 해외직구 가전제품들이 23일 오전 인천공항 인천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통관작업을 거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정강·정책에 포함된 ‘금본위제 회귀’가 관심을 끌고 있다. 금본위제란 금에 연동해 통화가치를 정하는 고정환율제를 말한다. 달러화에 금본위제를 적용한 것은 1971년 막을 내린 브레턴우즈 체제가 마지막이었다.
일단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이 그간 찍어낸 엄청난 물량의 달러를 수량이 한정된 금과 연결한다는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며 도입 가능성을 낮춰 봤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책이 실체로 나타날 경우 국제통화체제의 격변은 물론 한국 경제에도 원화가치 절상의 파도가 밀려올 수 있다.
대선 기간 공표한 트럼프의 정책에는 ‘달러가치를 금속에 고정하는 방식’을 고려하는 위원회를 제안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지난 7월18일 확정된 공화당의 정강을 이어받은 것으로 금본위제로 되돌아갈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트럼프 진영의 금본위제는 모든 나라의 통화를 금에 연결하는 19세기식 금본위제가 아니라, 1944년 탄생한 브레턴우즈 체제와 같은 ‘유연한 금본위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의 달러만 금과 고정비율(1온스35달러)로 바꾸고,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로 교환(환율 변동폭 ±1%)할 수 있게 했다. 다시 말해 금-달러 본위제로 볼 수 있다.
1960년대에 미국이 베트남전에 막대한 군비를 대기 위해 달러를 대량으로 찍어내면서 달러가치는 약세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값이 온스당 35달러를 넘어서면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려는 시장 움직임이 커지자 미국의 금 비축량은 바닥을 드러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1년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 주는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공화당이 과거 금본위제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배경엔 달러화 강세 기조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향후 트럼프판 뉴딜정책을 추진할 경우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달러가치 약세를 막으려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한상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부사장은 “지금의 자유변동환율제로는 달러가치 하락을 막을 수 없지만, 달러가치가 금값에 연동되는 브레턴우즈 체제 아래서는 금값만 떨어지지 않으면 달러가치가 부양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미국이 경제규모에 비해 금 보유량이 적고, 어떤 형태든 금본위제를 도입할 경우 미 중앙은행의 유동성 조절 능력이 약화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작다고 평가한다. 미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미국이 대공황 당시 금본위제를 지키려다가 제때 유동성을 공급해주지 못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도 “금에 달러가 묶여 있을 때는 유동성 조절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금의 가격 변동성이 크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수단이 제한돼 경기 변동폭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만약 금본위제가 도입될 경우 한국 경제에는 통상압력에 더해 원화가치 절상 압력까지 거세져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승경 부소장은 “무역수지를 고려한다면 원화가 지금보다 고평가돼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상춘 부사장은 “미국 달러가치를 금에 맡겨놓고 대미 무역 흑자 6개국에 통화 절상 압력을 가할 수 있어 한국의 대미 수출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금본위제는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겠지만 교역과 성장이 위축돼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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