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주의(트럼프의 사고방식과 행태)가 정통 경제학과 사회과학에 치명타를 가했다.”
산자이 레디 미국 뉴스쿨 경제학과 교수가 새로운 경제학의 구상을 위한 연구소(INET) 누리집에 이런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정통(주류)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이 위기를 맞았다는 얘기다. 아이엔이티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헤지펀드 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 주도로 꾸려진 연구소다.
레디 교수는 트럼프 승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결과의 충격을 재연하고 있다며, 하지만 파장은 트럼프 승리 쪽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승리가 전반적인 세계질서의 재구축과 그에 따른 사고방식의 변화를 예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레디는 그동안 주류 경제학 이념이 주류 정당의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정통 구실을 해왔다면서, 역사적으로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을 대변해온 정당들마저 시장물신주의의 ‘노예’가 됐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트럼프의 당선을 낳는 데 한몫했다는 게 레디의 진단이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비주류 경제학자다.
레디는 지난 30여년 동안 주류 경제학이 주류 정당 정책에 큰 영향을 준 항목으로 세계화와 금융화, 긴축을 꼽았다. 그의 논지는 이렇다.
우선 주류 경제학은 세계화와 관련해 기업 친화적인 무역·투자협정을 옹호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해왔다. 반면, 이런 협정에 담긴 노동·환경 기준에 대한 우려와 협정 발효에 따른 노조 협상력 약화, 노동자들의 일자리 상실 가능성, 협정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조처 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국민경제 차원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만들어내는 데도 소홀했다.
또한 주류 경제학은 금융화를 지원함으로써 주식시장 성과와 실물경제 실적이 따로 노는 현상을 짙게 했다. 기업 자산 수탈(경영은 부진하지만 자산이 많은 기업을 인수한 뒤 자산을 매각해 이득을 취하는 행위)과 국내외 외주화 등을 진행한 기업에 큰 보상을 안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실물경제에는 별다른 이득을 주지 못하고 되레 손실을 끼치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화는 또 세계화와 마찬가지로 국민경제 차원의 산업정책을 사실상 포기하도록 했다.
끝으로 긴축정책은 세계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장애요인이 됐다. 정부 활동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 생산성을 증진할 수 있는 정부 투자조차 제약했다. 주류 경제학의 잘못된 논거가 이런 결과를 빚은 것이다.
레디는 뿐만 아니라 주류 경제학이 트럼프 승리 등으로 표출된, 달라진 세계를 이해할 수단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주류 사회과학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레디는 주류 경제학과 사회과학이 전면적인 혁신을 하지 않으면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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