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투자 2개월 연속 감소…저소득·불안정노동자 등 직격탄
KDI “내년 주택건설 둔화, 성장률 0.4~0.5%p 끌어내릴 수도”
통화·재정 정책 모두 발목 잡혀…내년 2% 중반 성장도 의문
할인축제에 소비만 ‘반짝 특수’ 대규모 할인축제 ‘코리아세일페스타’ 첫날인 지난 9월 29일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 외벽에 관련 홍보물이 부착되어 있다. 연합뉴스
생산·소비·투자를 가리지 않고 경기가 전방위적으로 얼어붙고 있다. 이런 경기 찬바람은 소득 수준이 낮은 가구에 더 매섭게 몰아친다. 가계 빚과 주택 경기에 기댄 ‘질 나쁜 성장’도 내년엔 어렵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이런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정책 카드는 이미 소진됐거나 국정 혼란으로 발이 묶였다. 한국 경제가 ‘사면 초가’에 빠졌다.
30일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자료 등을 보면, 올 하반기들어 경기가 빠르게 식고 있다. 전반적인 현재의 경기 국면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9월(-0.3포인트)에 이어 10월에도 같은 폭으로 주저앉았다. 이 지수가 두달 연속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12년 8~10월 이후 처음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 올 하반기에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 악화는 전방위적이다. 전산업생산은 두달(9~10월) 연속 감소(계절조정·전월비 기준)했으며, 투자 역시 감소폭은 다소 줄었으나 두달 연속 줄었다. 지난달 소비만 유독 비교적 큰 폭(5.2%)으로 늘었으나, 지속성엔 의문부호가 찍힌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10월 소비지표가 좋게 나온 건 전달(-4.5%) 기저효과와 코리아세일페스타와 같은 정책 효과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득 수준이 적거나 일자리가 불안정한 계층이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한 예로 소득 하위 40%에 속한 가구(전국, 2인이상 기준)의 처분가능소득은 늘기는커녕 올 1분기 이후 3분기 내리 감소하고 있다. 특히 지난 3분기(7~9월)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 감소폭은 무려 7.1%(전년 동분기비)에 이른다. 1% 후반대인 소비자물가를 염두에 두면 이들 계층의 실질소득 감소폭은 9%에 가깝다.
임시일용직(300인 이상 기업 종사자 기준)의 월평균 임금이 지난 3월부터 8월 현재까지 6개월 연속 줄어든 것이나, 동네 식료품점 등 자영업 가게들을 지칭하는 ‘전문소매점’ 판매액 등의 지표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는 달리 두달(9~10월) 연속 줄어든 것은 하위 계층에 더 거센 찬바람이 불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관계자는 <한겨레>와 만나 “하위 계층의 소득 감소폭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 통계에선 드러나지 않겠지만 생계 자체가 흔들리며 눈물을 훔치는 가구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기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도 마땅치 않다. 일단 한국은행은 경기 진작을 위해 돈 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기준금리 인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험 요소인 가계부채 증가를 부채질할 수 있다. 또 다음달 미국의 정책 금리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은 터라 금리 인상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 급등이라는 금융시장 불안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재정 정책은 이미 정부의 활시위를 떠난 상태다. 매우 짜게 편성한 정부의 2017년 예산안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됐다. 가라앉는 경기를 떠받치고 소득 하위 계층의 생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당장 내년 초라도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권고가 나온다. 그러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탓에 국정 리더십이 무너진 터라 추경 편성은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실질)을 지난 6월에 내놓은 전망값(3.0%)보다 0.4%포인트나 내려잡은 것도 이런 사정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 분석가들 사이에선 내년 성장률이 2% 초반대도 힘겨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올해까지는 건설 경기에 기대어 그나마 전년 수준(2.6~2.7%)의 성장은 할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에는 이마저도 어렵다는 것이다. 오지윤·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이날 ‘최근 주택건설 급증세에 대한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내년엔 주택건설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전체 경제성장률을 0.4∼0.5%포인트가량 끌어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기관은 지난 5월 내년 경제성장률을 2.7%로 전망한 바 있다. 이 연구원의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만나 “종전 전망치(2.7%)를 내리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된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