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부총리직에 있는 한 중심을 잡고 (업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 저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장관들도 그렇고 공직자들도 책임감과 역사적 소명감을 갖고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정부 경제팀 수장이 누구인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면서 입은 마음의 상처가 아문 듯 자신감이 느껴진다. 지난달 28일 새해예산안 처리를 위해 김현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협조를 요청할 때와는 딴판이다. 유 부총리는 김 위원장에게 “물러날 사람이 아직도 앉아서 책임을 져야 하다니…”라는 등의 얘기를 하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부총리에 내정된 상태라 유 부총리 처지가 매우 옹색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14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유 부총리 언행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실상 국회의 재신임을 받은 탓인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유 부총리는 16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만나 경제안정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18일에는 서울 양재동 화훼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얘기를 듣고 정부 정책을 설명했다. 경제정책 사령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해소됐음을 보여준다. 어찌됐든 다행스런 일이다.
경제 현실은 예사롭지 않다. 성장률이 내년에는 2%대 중반으로 떨어지며 3년 내리 한은이 추정하는 잠재성장률(3.0~3.2%)을 밑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성장률이 낮으면 서민층과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어서 걱정스럽다.
특히 저소득층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3분기(7~9월) 최하위 10% 계층의 가처분소득이 한달 평균 71만7000원으로 한해 전보다 16.0% 줄고, 지출이 100만원을 밑돈 가구(2인 이상 가구, 실질지출 기준)가 13.0%로 2009년 3분기(14.0%) 이후 가장 많았다. 우울한 지표는 더 있다.
유 부총리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강구할 때다. 올해 정부 경제팀 수장을 맡아왔기에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은 유 부총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불식하고 명예회복을 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게다가 청와대가 관여할 여지가 많지 않고 정책방향만 잘 잡으면 야당 협조를 받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하지만 경제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 그렇다고 유 부총리에게 많은 일을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재임 기간이 길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먼저 저소득층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유 부총리도 기자간담회에서 그럴 뜻을 밝혔는데 말잔치에 그쳐서는 안된다. 경기둔화의 한파를 견뎌내면서 계층상승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소득층이 무너진 상태에서 나라경제의 온전한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아울러 재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올해 추경예산보다 0.5% 늘어나는 내년예산으로는 경제난을 타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유 부총리도 인정했다. 재정 집행을 최대한 상반기로 앞당기고 1분기 동향을 보아가며 추경 편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규모를 적절히 늘려 내년예산을 짰으면 이런 일을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 부총리 책임이 크다. 경기 둔화로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위한 재정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추경 편성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도 제대로 해야 한다. 시간을 끌다 비용을 늘리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은 물론,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지원할 대책이 필요하다. 가계부채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총부채상환비율과 주택담보인정비율을 다시 높여야 한다. 시행 시기를 얼마간 유보하더라도 비율 손질은 이른 시일에 해서 시장에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한은이 기준금리를 조정할 여지도 커진다.
한편, 규제프리존 특별법 추진 등은 보류하는 게 좋다. 법안에 담긴 기업실증특례제도 등이 논란을 빚고 있어서 이를 밀어붙이면 갈등을 더 키울 수 있다. 유 부총리가 일의 우선순위를 잘 가려 의미있는 성과를 내면 좋겠다. 촛불민심을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올 것이다.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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