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싶으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겠습니다.”
정부가 지난 2013년 6월4일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내건 구호다. 당시 “정부는 일하고 싶은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며 이렇게 밝혔다. 고용률 70%(15~64살 기준)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핵심공약의 하나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2017년까지 모두 238만개(한해 47만6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내놨다.
하지만 고용률 70% 달성은 물건너갔다. 지난해 수치가 66.1%인데 이를 올 한해 3.9%포인트 끌어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실상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도 했다. 유 부총리는 지난해 5월26일 인천의 한 오찬강연회에서 "고용률 70%를 달성하기는 솔직히 조금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구직자가 취업게시판을 골똘히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서 굳이 고용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자리가 생활의 기반이고 개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양질일수록 더 그렇다.
지금 고용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며칠전 통계청이 내놓은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해 취업자는 2623만5000명으로 한해 전보다 29만9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런 증가폭은 2009년(-7만2000명) 이후 가장 작은 것이다. 실업자는 101만2000명으로 집계 기준이 바뀐 2000년 이후 처음 100만명을 넘어섰고, 실업률은 3.7%로 2010년(3.7%) 뒤 가장 높았다.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인 9.8%를 기록했다.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 비중도 13.1%로 2002년(13.8%) 뒤 가장 컸다.
또한 일자리의 질이 걱정스럽다. 매출액 기준 100대 상장기업 직원 수가 지난해 9월말 현재 86만1578명으로 1년 새 0.8% 줄어든 게 그런 징후의 하나다. 아무래도 이들 큰 기업의 선호도와 급여가 다른 기업들보다 높다는 점에서 좋은 일자리가 그만큼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가 다시 줄고 숙박·음식점업 취업자 등이 는 것도 그렇다. 산업구조의 서비스화 등에 따라 제조업 취업자 비중 감소는 피할 수 없는 추세다. 그럼에도 비슷한 급여와 안정성을 지닌 일자리가 서비스 분야 등에서 크게 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다.
게다가 이런 우울한 상황이 이른 시일에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폭이 26만명으로 지난해보다 적어 실업률이 3.9%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도 엇비슷한 전망치를 제시했다. 무엇보다 경제성장세가 지난해보다 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업자들과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인공지능 활용 등으로 자동화가 빨리 진행된다면 일자리에 일으킬 파장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고별연설에서 자동화를 두고 말한 게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경제질서를 무너뜨릴 다음번 파도는 국외(세계화)에서 밀어닥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양질의 중간계급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 자동화의 무자비한 전개로부터 밀어닥칠 것이다.”
지금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경기 둔화로 고용사정이 나빠지지 않도록 거시·미시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경제정책의 중심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제라도 실효성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산업지도와 고용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 게 바람직한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제대로 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기본소득 도입 여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책임이 특히 무겁다. 사회안정에 긴요한 고용안정을 이루지 못하면 정치권의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대선 주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용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그리고 거기에 맞춰 복지제도를 어떻게 다시 짤지 큰 그림과 세부 실행방안을 내놓고 토론해야 한다. 전체 경제·사회정책과 잘 어우러지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길 바란다.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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