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트럼프의 시야에서 벗어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전략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국책연구기관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중국과 일본, 멕시코 등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구애 작전을 펼 경우 긁어부스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기본 전략은 ‘하이드 시(Hide See)가 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먼저 협상의 카드를 드러내기보다는 여러 패를 들고 있는 게 낫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반면) 정부 대응은 어그레시브(aggressive·공격적)한 것 같다. 국내 통상조직과 전문인력을 보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발언은 정부가 미국의 셰일가스를 도입하고 항공기를 구매하겠다는 등 구체적인 통상 대응 전략을 외부에 드러내고 있는 데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앞서 지난달 26일 정부는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미국 신정부와의 새로운 경제협력이 필요하다”며 미국산 셰일가스 등 원자재 및 기술집약적 장비 도입을 확대하고 미국 인프라 시장 진출을 위해 프로젝트 발굴에 나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후로 국내 언론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는데, 자제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정부 스스로 아직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언급 자체도 하지 않는데다, 현실적으로 재협상이 조기에 개시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재협상을 담당할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조직 규모로 볼 때 당장 현안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집중할 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다만 이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들어갈 경우 미국이 자동차 부문을 ‘0순위’로 올려 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종별 대미 무역수지에서 자동차 부문이 가장 큰 흑자를 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일본 도요타자동차 등과는 달리 국내 자동차 기업은 미국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 현지 조달 비중을 늘려야 하며 부품 협력사와의 미국 동반진출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기아자동차가 미국 내 2개의 완성차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나 부품은 국내에서 주로 조달하는 터라 자동차 부문의 대미 무역흑자가 계속 불어나는 상황을 염두에 둔 제안이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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