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는 사북역에 무궁화호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태백선은 상행 7회, 하행 7회 하루에 14회 열차가 다닌다.
지난달 25일 오전 11시5분 충청북도 제천을 출발한 무궁화호 1633열차(정동진행)는 1시간14분 만에 강원도 정선군 남면에 있는 민둥산역에 도착했다. 1966년부터 51년째 운영 중인 역이다. 민둥산에 가려면 제천~영월~예미~민둥산~사북~고한~태백 등으로 연결된 태백선을 이용해야 한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면 3시간10분 만에 다다를 수 있다.
태백선엔 평일 낮인데도 주민뿐만 아니라 등산객 등 사람들로 제법 북적였다. 열차가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을 지나가는 까닭이다. 민둥산역에 내려서니 충북 제천, 강원도 원주, 서울로 나가는 낮 12시51분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 열차를 놓치면 다음 열차는 오후 5시11분에나 탈 수 있다.
정부와 코레일 돈 안 된다는 이유로 7개 벽지노선 철도 운행 절반 줄여 민둥산역 가보니…병원 없어 아픈 노인들 걱정 버스 있어도 갈아타고 요금 비싸 부담 주민 줄고 관광객 감소로 지역사회 쇠퇴 우려
정선군 남면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예순여덟살 김아무개 할머니는 원주의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갑상선·혈압·관절 등 아픈 곳이 많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은 원주, 두 달에 한 번은 서울로 병원을 찾아간다. “여기엔 제대로 된 병원이 없어서 원주나 서울로 나가야 해. 열차는 한 번에 가고, 요금도 싸서 이것만 타.” 1790가구 3450명이 사는 남면에는 병원이 없다. 정선군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보건진료소가 있지만, 공중보건의가 간단한 진료만 해준다. 주민들은 병원을 다녀오기 위해 열차를 자주 이용한다. 버스편은 철도보다 불편하다. 민둥산에선 원주·태백·영월·서울 등으로 나가는 시외버스가 없다. 시내버스로 20~30분 떨어진 고한사북버스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갈아타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용도 열차가 더 싸다. 열차는 원주까지 7400원이지만, 버스는 시내·시외버스 합해 1만4800원이 들어간다. 김 할머니는 철도를 이용할 경우 30%의 노인 할인이 적용돼 원주까지 5200원만 내면 된다. 올해부터 열차 횟수가 상·하행 14회에서 8회로 줄어든다는 말에 김 할머니는 “전혀 몰랐다”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열차가 줄어들면 서울 병원 가기가 어려워져. 서울에 잘 곳이 없어서, 민둥산에서 아침 7시 열차 타고 갔다가 오후 4시 열차 타고 내려오면 딱 맞거든. 어쩌나, 여기서 사는 게 죄다.”
벽지노선 줄이자 10년새 사라진 간이역 100여곳
정부, 철도공익보다 효율성 잣대
올해 비용보전·손실보상 대폭 감축
벽지노선 교통약자들 ‘발등의 불’
마을 쇠락하고 지역균등발전 역행
민둥산역은 1966년 증산역이었으나 관광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이 역 이름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면서 2009년 9월부터 민둥산역이 됐다. 민둥산역에서 바라본 시내.
태백선은 통상 상행 7회, 하행 7회로 하루에 14회가 다닌다. 태백선 운행은 지난해 한때 상·하행 8회로 줄어들었던 적이 있다. 철도노조 파업으로 인력이 부족해지자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가 임시로 운행을 대폭 줄였던 것이다. 지난달 26일부터 운행횟수가 가까스로 회복됐는데, 코레일은 아예 하루 8회로 공식 축소한다는 계획을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코레일은 태백선을 비롯해 7개 벽지노선의 운행횟수를 108회에서 56회로 절반가량 줄이고, 16개 역은 근무자를 없애는 ‘무인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벽지노선 등의 예산을 삭감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다. 2일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정부가 코레일에 보전해주는 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 운임 감면, 벽지노선 유지 등의 공익서비스(PSO) 예산은 올해 2962억원으로 지난해(3509억원)보다 16%가 삭감돼 547억원이 줄어들었다. 특히 벽지노선 손실보상이 2111억원에서 1461억원으로 650억원, 31%나 대폭 감소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산 삭감과 관련해 “벽지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 효율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레일이 예산 삭감에 대응해 벽지노선 운행횟수를 대폭 줄이기로 하면서 ‘주민의 발’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던 벽지노선 철도는 사실상 ‘산소호흡기’를 떼는 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주민들의 이동권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7개 벽지노선에 있는 65개역을 이용하는 하루 승객만 3만5천명이다. 여기엔 관광객도 포함돼 있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주민들도 상당수 차지한다. 안호영 의원은 “주민을 실어나르는 공공철도의 기능이 약해지면 학생이나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피해가 가장 크다”며 “국민의 교통편의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역사회의 경제적 쇠퇴도 문제다. 민둥산역이 있는 남면 주민들만 해도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1996년부터 억새꽃 축제, 먹거리 장터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매해 가을에 열리는 민둥산 억새축제에는 전국에서 100만명 이상이 찾아온다. 이에 기차역 이름도 민둥산을 알리기 위해 증산역에서 2009년 민둥산역으로 바꿨다. 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아무개(62)씨는 “열차가 편하니까 평소에도 관광객들이 철도를 이용해 태백산·함백산·민둥산에 많이 찾아온다”며 “주민들은 지역경제를 살리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는데 정부가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말했다. 정선군도 걱정이 커졌다. 정선군 관계자는 “지금보다 열차 운행을 더 줄인다는 것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운행횟수가 뜸해지면 승객은 더 많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접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둥산역은 1966년 증산역이었으나 관광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이 역 이름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면서 2009년 9월부터 민둥산역이 됐다. 민둥산역 모습.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공공철도 등 교통 접근성이 계속 떨어지면 통학, 출퇴근, 쇼핑, 병원 방문 등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안 그래도 노인들만 남아 있는 지역사회에 젊은 인구의 유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경제도 쇠퇴해 지역사회의 고립이 심화할 것이란 얘기다.
일단 국토부는 코레일이 벽지노선 축소안을 공식 제출하자 “다시 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지역 주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신중하게 살펴보라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의 재검토 지시는 속내를 감춘 ‘꼼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정부는 2013년 6월에도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통해 적자가 큰 노선은 운영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익서비스 비용 전액 보전에도 소극적이었다. 코레일이 2011~2015년 5년간 공익서비스로 2조797억원을 썼지만, 정부는 1조6276억원(78.7%)만 지원했다. 부채(13조5천억)가 많은 코레일은 일반열차 운행횟수를 지속해서 줄여왔고, 이용객이 감소하면서 결국 역이 없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2007년 이후 사라진 간이역만 100곳이 넘는다.
한편,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이나 우리나라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철도역이 사라지면 마을이 빠른 속도로 쇠락했다”며 “정부가 지역균등발전을 지표로 삼고 있다면, 공공철도 기능을 약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선/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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