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빠지며 잠재성장률과 생산성 증가율이 많이 떨어졌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좀비 기업이 늘어난 게 일정한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최근 낸 ‘걸어다니는 주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좀비 기업들과 생산성 실적’이란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이같이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특히 “좀비 기업들이 1990년대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창조적 파괴(활동)를 억압하고 건강한 기업의 성장 기회를 빼앗으며 거시경제적 정체(상태)가 이어지도록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좀비 기업은 대체로 회생할 가능성이 없지만 정부 또는 채권단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파산을 면하고 있는 기업을 일컫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연구발표회 모습. 누리집
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좀비 기업과, 여기에 잠긴 생산적 자원이 크게 늘어났다며 이탈리아를 대표적인 나라로 소개했다. 실제로 이탈리아 좀비 기업의 자본이 전체 산업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7%에서 2013년 19%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이 빚어지면 “좀비 기업이 시장을 혼잡하게 만들고 해당 산업의 이윤을 떨어뜨릴 수 있기 (임금이 생산성 증가율보다 높게 오르고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가격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때문에” 문제라고 경제협력개발기구는 밝혔다. 그 여파로 건강한 기업, 그중에서도 최근 진입한 기업의 성장을 막게 된다는 것이다.
계량 분석 결과는 산업자본이 좀비 기업들에 많이 잠기면 잠길수록 비좀비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투자를 적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좀비 기업들이 산업계에 넘쳐나면 더 생산적인 기업들의 성장을 막아,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자본을 다시 배분하고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게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총요소생산성은 통상 노동과 자본의 기여 분이 아닌, 기술발전이나 혁신 등으로 이뤄지는 생산성 증대 분을 가리킨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처럼 좀비 기업이 늘어나 투자와 생산성 증가에 제약을 가하는 게 회원국들의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좀비 기업이 퇴출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요인으로는 파산제도 미흡과 생산물시장 개혁 부진, 채권기관 묵인, 중소기업 지원정책 등을 꼽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좀비 기업 퇴출에 따라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