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수주 가뭄’으로 빈사 상태에 빠져있다시피 한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새해 첫 달 수주 실적에서 중국과 일본을 앞질렀다. ‘수주 절벽’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신호로 받아들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7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라크슨 자료를 보면, 1월 세계 선박 발주량은 60만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 31척)다. 지난해 1월(56만CGT, 44척)과 유사한 규모다. 지난달 한국의 수주 실적은 33만CGT(7척)다. 지난해 1월(2만CGT, 1척)이나 12월(13만CGT, 3척)에 견줘 크게 늘었다.
중국과 일본의 1월 수주 실적은 각각 11만CGT(8척), 2만CGT(1척)로 1년 전의 30만CGT(25척), 9만CGT(7척)보다 크게 줄었다. 수주 점유율은 한국 55.5%, 중국 18.3%, 일본 4.1%다. 수주 실적을 종류별로 보면, 해양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설비(FSRU) 2척(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2척(현대중공업), 석유제품운반선 3척(현대미포조선 1척, 대한조선 2척)이다.
하지만 1월 한 달 성적일 뿐이라 섣불리 의미 있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세계 수주잔량은 1월 말 기준 8187만CGT로, 2004년 8월 말(8099만CGT)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중국 2840만CGT, 일본 1926만CGT, 한국 1897만CGT 순이다. 우리나라는 두 달째 일본에 근소하게 뒤지고 있다. 독(선박건조대)의 일감이 빠르게 줄어드는 상태가 지속중인 것이다. 수출입은행 해양금융종합센터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해양플랜트 발주에 따른 선박금융 계약 체결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대형 컨테이너 상선과 유조선에 걸쳐 선박금융 요청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 조선업의 지난해 수주량이 최근 5년(2011~2015년) 평균의 12.2%로 급감했다며, 올해 24.1%로 다소 증가세로 돌아서겠지만 2020년까지 해마다 최근 5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정했다. 수주잔량은 더욱 나빠져 올해는 최근 5년 평균의 46.2% 수준으로 감소하고 2020년에는 27.4%로 더 줄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업은 세계 경기 추세와 국제유가 향방에 민감하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20달러대에서 최근 55달러까지 오른 유가 상승세에 따라 앞으로 수주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이에 대해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가 폭락으로 중단된 해양플랜트 수주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새로 발주·건조한 선박이 많은데다 선박 수명은 20~30년이라서 몇 년 안에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설비 과잉 상태에서 수주량이 조금씩 늘어난다해도 여전히 일감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월 수주량 추세가 올해 지속되면 연간 약 350만CGT가량 되는데, 작년 수주량(180만CGT)보다는 많지만 2015년(약 1천만CGT)에는 한참 못 미친다”며 “한두 달 수주량이 증가한다고 업황 회복을 성급하게 기대하지 말고 설비 과잉 해소부터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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