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간 국가경제는 성장했으나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경제”를 만드는 데 실패했으며 “국민을 잘살게 한다는 목적을 상실하고 ‘나라 경제가 잘되면 나도 잘살게 된다’는 믿음도 배신했다”는 원로 경제학자의 준열한 진단이 나왔다.
9일 서강대에서 열린 경제학공동학술대회의 전체회의에서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국민은 어떤 한국경제 원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경제 성장이 국민 삶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장 교수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1990~2015년 국내총생산(GDP) 누적성장률은 249.0%인 반면 ‘평균 가계소득’ 누적증가율은 90.5%에 그친다. 같은 기간 일자리(총취업자 수) 누적증가율은 43.3%로, 역시 경제 성장과 엄청난 격차를 보였다.
장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경제 성장과 가계총소득 증가 사이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1990~97년 누적성장률은 70.7%, 가계총소득 누적증가율은 63.2%다. 임금 등 가계의 살림이 경제가 성장한 만큼 함께 나아졌다는 뜻이다. 이후 격차가 두드러지게 벌어졌다. 1997~2015년 누적 경제성장률은 104.4%인데 가계총소득 누적 실질증가율은 68.4%에 불과하다.
그러나 계층 간 소득 격차가 갈수록 심해져 국민계정상의 가계총소득은 평균적 국민들의 살림 형편 변화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게 된다. 가계총소득이 아니라 통계청이 조사하는 평균 가계소득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경제 성장과 가계 분배 몫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1997~2015년 1인당 지디피 누적성장률은 85.6%였으나 평균 가계소득 누적 실질증가율은 19.7%에 그쳤다. 장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평균적 국민들의 처지에서 볼 때 경제 성장은 자신들의 삶의 향상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럼 성장의 과실은 누가 가져갔을까? 국민총소득 중에서 가계 몫은 1990년 71.6%에서 2015년 62.0%로 줄었다. 반대로 기업소득 비중은 1990년 17.0%에서 2015년 24.6%로 늘었다. 자본을 가진 기업과 주주의 몫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셈이다.
국제 비교를 하면 한국에서 가계 몫이 현저히 줄어드는 현상이 유독 심하다는 게 한눈에 드러난다. 2000~2015년 누적 경제성장률은 9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이 기간의 가계 순처분가능소득 누적증가율은 54.6%다. 두 지표의 격차(39.7%포인트)는 오이시디 회원국 중에서 가장 크다. 장 교수는 “한국은 성장률 대비 가계소득 증가율의 비율이 오이디시 국가 중에 하위 9번째다. 우리와 달리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80% 이상인 나라도 17개국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일반 가계의 살림이 경제 성장과 괴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다른 지표는 소득 불평등이다. 줄어든 가계소득 몫조차 계층 간에 매우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것이다. 가계총소득 중에서 상위 10%의 몫은 1990년 37.1%였는데 2015년 48.5%로 대폭 증가했다. 장 교수는 “한국 경제는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경제 상태가 아니다. 성장의 결과로 국민이 잘살게 된 것이 아니라 기업만 부자가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경제의 질병과 증상이 어떻게 나빠지고 있는지 보여준 발표문”이라며 “경기침체 때문이 아니라, 낮아도 성장은 했는데 그 몫이 소득 중하위층보다는 상위층의 미실현 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소득 위주로 돌아간 것이 일반 국민들의 삶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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