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독일이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해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9일 보도했다. 무역수지는 수출액과 수입액의 차이를 일컫는다.
독일의 지난해 무역흑자는 2529억유로(2706억달러)로 제2차 세계대전 뒤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상품 수출이 1.2% 늘어난 반면, 수입은 0.6% 늘어난 데 그친 결과다. 독일의 무역흑자는 국내총생산의 8.1%에 이르는 규모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추산했다.
무역수지에 서비스수지와 소득수지 등을 더한 경상수지도 2660억유로를 나타내 1991년부터 관련 통계가 나온 뒤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국내총생산 대비 8.5% 수준으로 추정된다.
독일 두뇌집단인 DIW 마르셀 프라처 소장은 대외수지의 큰폭 흑자가 미국 쪽에서 독일에 대한 많은 비판을 부르고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 기조를 뒷받침하는 논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독일의 미국에 대한 순수출액이 지난해 1~11월 450억달러나 돼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현재 독일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며칠 전 대표적인 대미 흑자국인 중국, 독일, 일본 등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독일에 대해서는 미국에 많은 자동차를 수출하면서 미국 업체가 독일 시장에 접근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백악관에 새로 만들어진 국가무역위원회의 피터 나바로 의장은 유로화의 약세로 독일 수출업체들이 부당한 이득을 얻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구글 누리집
물론, 독일은 이런 비판이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앙겔라 메르켈 수상은 독일이 환율, 이자율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독일 등 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의 통화정책은 개별 나라 중앙은행이 아닌 유럽중앙은행이 맡고 있어서 환율과 이자율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 같다. 한편에서는 독일이 유로화의 약세를 낳고 있는 유럽중앙은행의 통화부양책에 강한 이견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미국의 비판이 과녁을 빗나갔다고 얘기한다. 독일이 무역흑자를 내는 주된 요인이 독일 기업들의 경쟁력에 있다며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쉽사리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독일의 대외 흑자가 큰 것도 문제지만 유로화 환율이 독일의 경제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독일이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는 데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이 마르크화를 계속 쓰고 있다면 마르크화의 가치가 높아져 독일의 흑자가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같은 사람들이 그동안 독일에 내수 부양책을 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이런 진단과 닿아 있다. 부양책을 통해 혜택을 나누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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