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트럼프와 세계경제
트럼프와 세계경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이라는 기존 질서를 허물고 세계경제에 보호무역 강화와 통상 마찰이라는 새로운 위험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부산항 신항 부두에 접안한 컨테이너선에 수출 화물을 선적하는 모습. 연합뉴스
▶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제사회에 일깨워준 교훈은 분명했다. 하지만 어느새 분노의 방향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고강도 긴축에 맞서며 생존권을 요구하던 ‘분노의 유럽’, 탐욕스런 금융자본을 겨냥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등은 이제 각종 권위주의와 극우적 반동에 힘없이 밀려나고 있다. ‘하드 트럼프’의 부각은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 시대, 세계경제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만성적 수요 부족으로 ‘장기정체’
중산층 붕괴가 사회적 갈등 키워
전후 ‘성장협정’ 깨진 게 주요 원인 미국에선 ‘하드 트럼프’ 측면 부각
선진국 최상위층이 부 독점했지만
불평등 확대를 ‘외부의 적’ 탓으로
‘체계의 혼돈’ 낳는 방아쇠 될 수도 하지만 이후 행보는 ‘하드 트럼프’ 측면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극우적이고 초자유주의적 인사 위주로 단행된 행정부 인사는 물론, 취임 직후의 반이민과 보호주의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조치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가 당선 직후 강조했던 인프라 투자나 규제 완화는 상당 부분 미국 의회와의 협력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야당인 민주당(규제완화에 반대)은 물론이고 여당인 공화당(재정적자에 반대)에서조차도 제대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는 주로 본인의 재량 여지가 큰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중이다. 그 결과 트럼플레이션 기대가 퇴조하면서 그의 정책 불확실성이 다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는 게 현재 모습이다. ‘경제의 뉴노멀’에서 ‘정치의 뉴노멀’로 트럼프의 소통 방식도 가히 충격과 전율 수준에 가깝다. 자신의 흠을 잡는 언론을 “가짜뉴스”로 매도하는가 하면, 취임식 인파에 대한 허무맹랑한 자찬을 “대안사실”이라 포장하면서 진실과 거짓의 구분법마저 허물고 있다. 사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의 단어’로 “탈진실”을 꼽은 바 있다. 이미 선거 기간 트럼프의 행보에서 보듯,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이 부차화되고 신념이나 감정이 중요시되는 현상의 만연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도 트럼프 현상에 주목하면서 “탈진실의 정치 시대에 들어섰다”고 개탄한 바 있다. 비단 트럼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지난해 6월 세상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최근 프랑스를 필두로 선거의 해를 맞아 유럽 대륙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는 극우주의 열풍도 마찬가지다. 이밖에 러시아를 비롯해 터키, 이집트 등지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흐름도 같은 맥락이다. 나아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미식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실추되면서 일종의 대안 모델로 주목을 끌기도 했던 중국에서조차 시진핑의 1인 독재 강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과연 트럼프 시대에 세계경제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우선 트럼프 시대가 맞닥뜨린 조건부터 따져보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과 저물가 기조가 장기화되는 건 전세계적 현상이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점차 ‘장기정체’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만성적 수요 부족으로 인해 통화정책 약발에만 의존한 거품으로 지탱되던 선진국의 경기가 장기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 내용이다. 한국도 사정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선진국 경제 전반에 일반화된 일본식 장기불황 위험의 여파는 신흥국으로도 일피만파 번지고 있다. 신흥국의 주요 수출품인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저공비행이 이어지고, 그동안 세계화를 견인했던 무역도 극도의 침체를 거듭하는 탓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크나, 그 실체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다. 기술혁신의 파괴적 동학을 고려할 때, 4차 산업혁명에 편승한 일부 부문의 막대한 기회에도 불구하고 정작 경제 전반의 부가가치 창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정보기술 혁신 등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이 오히려 경제 전체적으로는 쇠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남는 것은 자본흐름의 변덕스런 속성 혹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심화뿐이다. 성장의 파이가 축소되는 가운데 그나마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과 투자 기회에 대한 집착이, 점차 한계에 직면한 주요국 통화정책의 엇갈린 행보와 맞물린 때문이다. 이른바 ‘경제의 뉴노멀’은 아직 혼돈의 아우라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지금은 경제를 넘어 정치에까지 뉴노멀이 확산되는 듯하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고 소득 불평등의 심화로 중산층의 붕괴가 가속되면서 사회·정치적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교역 급증 등 세계경제의 확대 재생산이 퇴보함에 따라 그간 고도성장 과정에서 억눌렸던 불만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양차 대전 이후 세계 주요국의 정치를 지탱했던 일종의 ‘성장협정’(자유주의·신자유주의)이 깨지면서 다양한 정치적 리스크를 양산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그 결과는? 경제적 박탈감과 결부되어 그동안 억압되어왔던 다양한 갈등이 정치의 뉴노멀을 맞아 마구 분출하고 있다. 현대 세계를 지탱하던 모종의 협정 혹은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인종이나 종교, 민족(종족), 문화 등을 배경으로 한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학’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분리주의와 고립주의는 새로운 정체성 찾기에 다름 아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주장한 ‘역사의 종말’이 패퇴하고 이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다시 득세하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헌팅턴이 경계한 “야만”이 더 이상 비서구가 아니라 서구 자체에서 기세를 부리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글로벌 리더십이 실종된 G-0 시대에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극도로 확대되고 본격적인 환율전쟁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시카고옵션거래소에서 트레이더들이 거래 주문을 내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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