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이후 243곳 보상받아
정부는 방치…실제 피해 더 클 것
정부는 방치…실제 피해 더 클 것
지난 12일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군 마로면의 한우농장 진입도로가 나흘째 봉쇄돼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도축장에서 직원이 구제역 방역을 위해 소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백신 못미덥지만, 거부하면 보상 안되니…”
<구제역 발병 11일째…속타는 축산농>
“백신을 믿을 수 없고, 소도 싫어하지만 주사를 안 놓을 수 없지요. 그나마 구제역 등 병을 막는 길이고, 안 했다가 전염병 나면 보상금도 제대로 못 받으니….” 방역 당국과 달리 축산 농민들은 백신에 대한 불신이 깊다. 일부 농가에선 백신이 아예 ‘과학’이 아니라 ‘로또’라고 비아냥댈 정도다.
16일 현재 구제역이 발생한 지 열하루째가 됐다. 처음으로 이틀 연달아 의심사례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자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구제역 바이러스 잠복 기간이 2주가량 되는 만큼, 아직 긴장의 끈을 놓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다행히 진정된다 해도 수습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구제역 발생 이후 백신 문제로 불거진 정부와 농가 간 불신과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다.
방역 당국은 백신만 접종하면 구제역을 막을 수 있다고 했지만, 농가에선 백신 접종과 상관없이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 들어 충북 보은 7곳, 경기 연천, 전북 정읍 등 9곳에서 구제역이 나타났지만 농가 쪽에선 모두 백신을 접종했다고 주장한다. 처음 구제역이 발생한 보은 마로면 관기리의 젖소 농장 최선규(40)씨는 “정확하게 접종을 했는데 항체 형성률은 19%였다. 백신을 안 썼다가 구제역에 걸리면 피해 보상금도 제대로 못 받기 때문에 접종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역 당국은 농가들이 부작용 불안으로 상황에 따라 백신 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사실 백신 부작용은 축산 농가에 공포의 대상이다. 맹주일(53) 한우협회 보은지부장은 “농가에선 당연히 접종을 기피하고 싶다. 젖소는 젖을 짜면 착유량이 떨어지고, 한우는 유산 위험에 더해 한동안 사료를 잘 먹지 않아 생육이 멈춘다. 돼지도 육질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전염병이 한 번 나면 완전히 망하기 때문에 접종하지 않을 순 없다”고 강조했다. 강원도에서 한우 80여마리를 키우는 박아무개(62)씨는 “백신을 놓으면 소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며칠 동안 잘 먹지도 않고, 임신한 소는 유산도 한다”며 “주사를 놓을 때도 소들이 난폭해진다. 주사를 놓을 때마다 난리가 나고, 다치는 소도 있다”고 했다.
농민들은 백신 부작용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조처에 불만을 토로했다. 경기 연천에서 한우·양 등 200여마리를 키우는 명인구(64)씨는 “백신을 접종하면 유산 등의 피해가 있지만 정부가 유산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보상도 잘 해주지 않아 농민들만 손해라는 불신이 팽배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백신 접종 지원과 사후관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북 정읍에서 한우 70여 마리를 키우는 강아무개(60)씨는 “수년 전 소에 접종을 하다가 치아 4개가 부러지고 다리도 다쳤다. 전문가가 있는 방역 당국이 직접 접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 보은의 최선규씨는 “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의심을 받을 바에는 차라리 정부·지자체 등이 접종을 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창섭 충북도 축산과장은 “접종 과정의 어려움도 있고, 접종 뒤 항체 형성률 관리 등을 위해 공공 수의사 등을 통한 접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수의사협회 등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지원 확대를 주문했다. 강신영 충북대 교수(수의과대학)는 “축산인이 고령화하고 있는데다 접종 과정상의 안전사고, 접종 부실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인력·예산 등을 확보해 공공 방역수의사 등을 통해 접종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경만·박임근·박수혁·최예린·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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