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경영계·정부여당의 상법개정 반대는 최순실 사태 교훈 망각”

등록 2017-02-23 18:17수정 2017-02-23 22:27

총수 쪽 장악한 대기업 이사회는 ‘거수기’
이사회 상정 안건 99.6%가 원안대로 처리
견제 못하는 이사회도 ‘최 게이트’ 한 원인
‘외국자본 경영권 위협론’ 등 제기하지만
“상법 개정은 자율적 개선 유도 최소장치”
#1.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논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의 중요한 단초가 됐다. ‘재앙’은 같은 해 5월26일 삼성물산 이사회에서 시작됐다. 당시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3명 등 참석자 7명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을 1 대 0.35(삼성물산 1주를 제일모직 0.35주로 교환)로 하는 합병계약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삼성물산의 적정 합병 비율에 대해서는 분석기관마다 의견이 다양하지만, 원래 기업가치에 비해 불리하게 책정됐다는 점은 대체로 일치한다. 국민연금이 제시한 적정 합병비율 1 대 0.46을 기준으로 하면, 삼성 총수 일가와 우호세력, 국민연금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주주(지분 69%)는 불공정 합병으로 1조16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삼성물산 이사들이 상법이 정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에 충실했다면 회사 주가가 기업가치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합병 비율이 불리하게 책정된 시점에 굳이 합병을 강행하는 데 찬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 특검은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 등 53개 대기업이 2015년 10월 미르와 케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774억원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에 대한 뇌물로 의심한다. 이들 대기업 중에서 이사회 의결을 거친 곳은 포스코와 케이티(KT)뿐이다. 특검은 또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피의사실에 2015년 8월부터 2016년 10월 사이에 삼성전자가 정유라씨의 독일 승마훈련비 명목으로 213억원의 지원 계약을 맺은 것도 포함시켰다. 삼성전자가 이 기간 중에 개최한 15차례의 이사회 의결 안건들에서 최씨 모녀 관련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재단 출연과 최씨 지원 안건이 이사회에 제대로 보고돼 적정성이나 위험성을 엄밀히 따졌다면 총수가 구속되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들 사례들은 모두 재벌 총수와 경영진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사외이사들이 한낱 ‘거수기’로 전락한 현실을 보여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 10조원 이상 25개 재벌그룹의 상장계열사 165곳의 2015년 4월~2016년 3월 1년간 이사회 안건 처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 3997건 중에서 3981건(99.6%)이 원안 그대로 가결됐다. 사외이사 반대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못한 안건은 16건(0.4%)에 그치고, 부결 안건은 단 2건(0.05%)에 불과하다.

상법 개정안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여 총수 일가와 경영진을 제대로 감시·견제하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핵심은 사외이사를 겸하는 감사위원을 뽑을 때는 대주주를 비롯해 모든 주주들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이사를 뽑을 때 주식 1주에 대해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표)을 줘서 소액주주들이 표를 몰아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집중투표제’, 자회사의 이사가 불법행위로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우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다중대표소송’ 도입이다. 또 전자투표제, 노동자 대표기구 추천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도 주요 사안이다.

상법 개정의 필요성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제기됐으나 경영계의 반대로 11년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12년 대선 때에는 박근혜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집권 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대 국회 들어 기업지배구조 개선 관련 상법 개정안은 김종인, 채이배 의원 등이 발의한 것을 포함해 무려 11개에 달히고, 2월 국회에서 처리할 최우선 경제개혁 과제로 꼽혀왔다. 경영계와 정부·여당의 반대를 두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교훈을 망각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영계에서는 9일 대한상공회의소를 시작으로 13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각각 상법 개정 반대 의견을 발표했다. 경영계는 그 이유로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론’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사실 왜곡과 과장, 억지라는 비판이 많다. 경제개혁연대는 “투자 목적이나 패턴이 다른 외국인 주주들이 연합해서 단일하게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가정은 현실성이 없고, 외국인 주주 대부분은 경영 참여에 소극적”이라며 “외부 주주가 추천한 이사 한두 명이 운 좋게 이사회에 진출해도 이사회 장악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이 경영계를 거들며 차등의결권제(지배주주에게 보통주의 몇 배에 달하는 의결권 부여)나 포이즌필(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해 적대적 인수합병을 어렵게 하는 것)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황금낙하산(최고경영자가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임기 전에 사임하면 거액의 퇴직금 등을 지급하는 제도), 제3자 신주배정 같은 여러 경영권 방어수단이 도입돼 있다. 특히 재벌은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통해 강력한 경영권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지배구조원은 “포이즌필은 (한국처럼) 이사회가 대주주에게 장악된 경우 무능한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고착화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칠 뿐 아니라 경쟁력 없는 기업이 시장에 잔존하는 비효율적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총수 일가의 전횡과 고질적 정경유착을 막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경영계가 반대할 명분은 더 이상 없다”며 “기업이 자율적 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상법 개정마저 거부하는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home01.html/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