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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유일호 부총리의 낙수이론 ‘불신임’

등록 2017-03-01 10:27수정 2017-03-01 15:01

정책에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혀 다행
추경 등 분배악화 막을 실효성있는 대책 필요
“낙수이론, 예를 들면 몇 개의 선도 부문이 잘되면 그것(혜택)이 퍼진다 하는 것이 만약에 낙수이론이라면 저희가 그런 식의 경제구조를 생각할 때는 아니고 그렇게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과거와 같이 특정 어느 부문이 잘되면 낙수효과가 나타나므로 거기를 직접적으로 지원도 많이 하고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여전히 지금 정부는 기존의 낙수이론에 연연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정부가 ‘선도 부문’ 또는 ‘특정 부문’, 곧 대기업과 부자들을 지원해 이들의 소득이나 부가 늘어나면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도 돌아간다는 이론에 기대어 정책을 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유 부총리가 낙수이론(효과론)을 적용하지 않는다니 다행이다. 정말로 그런지는 좀더 따져봐야 겠지만 만약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낙수이론에 미련을 둔다면 큰 일이다. 안그래도 경제 성과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아 문제인데 이를 더 덧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3일 내수활성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3일 내수활성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통계청이 내놓은 ‘가계동향’ 자료를 한번 살펴보자. 지난해 저소득층은 소득이 줄어든 반면, 고소득층은 늘어 분배지표가 크게 나빠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위20% 계층인 1분위의 가계소득(2인이상 전국가구, 가처분소득 기준)이 한해전보다 5.6%, 2분위가 0.8% 감소했으나, 3분위는 0.2%, 4분위는 1.3%, 5분위는 2.1% 증가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증가율도 높았다. 그 결과 5분위 소득을 1분위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이 4.48배로 상승했다. 세계금융위기 와중인 2008년 4.98배로 뛴 뒤 내림세를 이어가다 지난해 오름세로 돌아선 것이다. 소득불평등의 확대를 가리키는 자료는 이것말고도 여럿이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한 듯 올해 들어서는 분배문제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경제정책 총괄부서인 기획재정부가 1월5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새해 업무를 보고하면서 “소득분배 지표는 그간 개선되어 왔으나 지난해 들어 악화(해), 정규직-비정규직·대-중소기업 등 부문별 격차 확대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1일에는 유 부총리 주재로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열어 소득분배 악화 원인과 대응 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2016년에는 고용 둔화 등으로 가계소득 증가세가 전반적으로 약화되는 가운데, 임시일용직 감소, 영세자영업 경쟁 심화 등으로 저소득층의 근로·사업소득이 감소”해 분배상태가 나빠졌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실제로 1분위 근로소득은 9.8%, 사업소득은 17.1%나 줄어들었다. 경기 부진의 한파가 저소득층에 더 세게 몰아쳤다는 얘기다.

정부는 “민생안정과 분배개선을 위해”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일자리 예산을 차질없이 조기에 집행하고 상대적으로 빈곤지수가 높은 1~2인·노인 가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들에 미세조정을 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보지만 이 정도로 분배상태의 악화를 막을 수 있을까. 좀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물론, 큰 틀에서 제도 개편을 하는 것은 현 정부 임기를 생각할 때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추가경정예산을 이른 시일에 편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정부는 이미 편성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국회에서 올해 추경예산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한 게 참고할 만하다. 이 총재는 “올해 재정지출 증가율이 0.5%로 돼 있다. 수입(세입)증가율이나 3%대 후반인 명목 지디피(국내총생산) 증가율(전망치)을 고려할 때 추경이 필요하다면 이것이 참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추경을 편성할 여지가 크다는 뜻을 에둘러 밝히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정부는 지금 추경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 때를 놓치면 효과가 떨어지기 마련이니 정치권도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면 좋겠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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