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자유한국당이 7일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적극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힌 가운데, 세계무역기구 규범이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위반을 내세운다해서 이번 사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본질이 사드 안보 문제인만큼 외교안보 채널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분야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은 7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번 사안은 2000년에 발생한 한국과 중국간 마늘 수입관세 분쟁이 아니다. 사드 배치라는 안보에 관한 이슈다. 세계무역기구나 자유무역협정(FTA)은 본래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협정 이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드 문제를 국제통상질서인 세계무역기구 틀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세계무역기구에 이른바 ‘안보 예외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서비스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등을 포함해 수많은 국제통상협정을 규범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GATT 제21조와 GATS 제14조 2항은 ‘안보상의 이익’이라는 무역 ’예외조항’을 담고 있다. 이 내용을 보면, △협정 당사자가 자국의 필수적인 안보이익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조치를 방해하면 안된다 △군사시설 공급과 관련해 직접적·간접적으로 행해지는 그밖의 재화 및 물질의 거래에 관련된 조치(는 인정된다) △국제관계에 있어서 그밖의 비상시에 취하는 조치(는 인정된다)’ 등을 명시하고 있다. 자국의 ‘중대한 안보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통상규제 조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제21조2항(필수적 안보)에 “GATT 제20조와 GATS 제14조는 이 협정에 통합되어 그 일부가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2장(상품에 대한 내국민 대우 및 시장접근) △제7장(무역구제) △8장(서비스 무역) △제9장(금융서비스) △제10장(통신) △제13장(전자상거래) 모두 GTAA 협정 제20조 상의 ‘일반적 예외’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제23조2항에도 ”자국의 필수적 안보이익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조처를 인정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송 변호사는 “중국은 이번 사안에 대해 안보에 관한 관심이라고 주장하는데, 한국이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고 그러면 한-중 갈등 상황이 더 악화될 공산이 크다”며 “이번 사태는 안보 문제이고, 사드 자체를 둘러싼 외교·안보 이슈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정부가 뒤늦게 세계무역기구 제소 카드를 꺼내든 건 대책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고, 뭔가 대응에 나섰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사안의 본질인 사드 안보 현안을 덮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설사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더라도 분쟁해결패널의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린다. 게다가, 나중에 중국의 한국관광 금지조처가 국제무역규범 위반이라는 결정이 나오더라도 중국 쪽이 “안보 이슈”라고 계속 주장하면서 아무런 원상회복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한국 정부로서는 “그러면 중국산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내용으로 또다시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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