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지표가 목표치에 못미치는 게 많아 그런 평가가 나올 수 있지만, 공공부문을 비롯한 4대개혁 등은 방향 설정이 잘 됐으며 목표를 달성한 것도 있다고 강조했다. 유 부총리 발언은 그의 이력에 비춰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당선인 비서실장,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국토교통부 장관에 이어 경제부총리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이 부분적이라면 몰라도 전반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운데)가 지난 12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누리집
하지만 유 부총리의 이런 인식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박 전 대통령 재임 동안 다른 나라들의 실적이 대체로 좋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4대개혁도 그렇지만 특히 경제민주화 등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본다.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추진됐다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한몫한 재벌과의 유착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탄핵과 무관하게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유 부총리 진단에 크게 공감한다. 탄핵 국면이 빚어지기 전부터 소비 등 내수가 부진했고 수출도 최근 들어 호전되긴 했으나 낙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으로 우리경제의 대내 불확실성은 줄어들겠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요소가 적지 않다. 이는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와 중국의 사드 보복 움직임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은 되레 늘어날 수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에는 큰 악재가 될 가능성이 짙다.
어느 때보다 더 정부 경제팀이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재임기간이 길어야 두달 정도라 한계가 있겠지만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아껴서는 안된다.
우선 대외 불확실성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중국이 한국에 대한 관광 제한 등을 확대하는 것이나,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나 하나같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중, 한-미 양자 관계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국제유가가 급격히 인상될 경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등과는 상황이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대응 논리를 잘 개발해 부담을 줄여야 한다.
또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하위 20%계층의 가처분소득은 지난해 5.6%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팍팍한 살림살이를 외면한 채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미 발표한 관련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는 한편, 실효성있는 지원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추가경정예산의 편성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경기가 계속 둔화하고 경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재정지출 확대가 요긴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정부도 1분기(1~3월) 동향을 보고 추경 편성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대통령 선거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제약 요인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 검토해야 한다. 취약계층과 구조조정을 지원하면서 경기를 진작할 수 있는 사업이 꽤 있을 것이다.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한달 소득에서 최저생계비를 빼고 나면 부채의 원리금을 갚기도 어려워지는 한계가구가 216만 가구에 이른다는 분석(한국신용평가)도 있다. 이는 전체 부채 가구의 19.9%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시장의 예상대로 15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올리고 연내에 2~3차례 더 인상하면 국내 금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걸맞은 대비책을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박근혜 정부가 주택담보인정비율과 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대폭 완화해 가계부채 확대에 큰 구실을 했으니 경제팀은 책임을 느껴야 한다.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겠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다. 경제팀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함으로써 다음 정부에 떠넘기는 짐을 되도록 줄여야 한다. 탄핵에 담긴 뜻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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