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기업들이 올해 낮은 임금 인상률을 제시해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아베노믹스) 목표 달성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15일 보도했다.
임금 상승을 통해 소비를 늘리고 물가를 끌어올려 디플레이션 기조에서 탈피하면서 경기가 진작되도록 한다는 구상이 아베노믹스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동안 대기업들에 임금을 적절히 올리도록 촉구해왔으며 올해의 경우 인상률이 적어도 지난해 수준은 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기대와는 달리 주요 대기업들이 올해 임금협상(춘투)을 맞아 내놓은 임금 인상률은 대체로 지난해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요타자동차 경영진은 올해 한달 기본급을 작년보다 200엔 적은 1300엔 올리겠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대신 어린이가 있는 직원들에게 1100엔의 수당을 주겠다고 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일본의 다른 기업들이 임금조정을 할 때 안내자 구실을 하고 있다. 닛산자동차는 도요타를 의식한 듯 1500엔(지난해 3000엔), 파나소닉은 1000엔(1500엔)의 기본급 인상안을 제시했다. 혼다자동차의 경우 지난해보다 500엔 오른 1600엔을 내놓았는데, 작년의 낮은 인상액을 일부 벌충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에서는 디플레이션 여파 등으로 노조가 큰 폭의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경영진의 인상안을 별다른 수정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들은 올해 낮은 인상률을 제시하며 그 근거로 지난해 엔화 강세에다 물가상승률 하락으로 이윤이 줄어든 점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엔화가 약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미국의 정책기조가 변화될 가능성이 커 경영 여건이 불확실하다고 덧붙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임금상승률의 하락이 아베 총리에겐 상당히 실망스런 일일 것 같다고 내다봤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2%로 끌어올리려는 일본중앙은행의 계획은 다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대기업들과 달리 중소 제조기업들은 지난해보다 조금 높은 인상률을 내놓고 있다. 이는 노동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중소기업들이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임금 상승률이 낮은 현상은 일본말고도 캐나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5일 전했다. 이들 나라의 실업률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크게 낮아져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를 보이고 있는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