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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사외이사의 독립적 경영감시는 올해도 헛된 바람일까?

등록 2017-04-12 15:24수정 2017-08-01 11:48

【HERI 쟁점진단】
-지난해 안건 가결비율 99.8%, 보수는 한 회당 700만 원꼴
-관료 선호 여전, 김영란법 이후 교수 출신 더 늘어
-유명무실한 추천위원회부터 제대로 운영해야
지난 5년간 약 5조 7천억 원의 분식회계 사태를 야기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법원 판결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회계 부정 사건의 몸통인 고재호 전(前) 사장은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고, 지난 5일엔 당시 회계 법인이었던 딜로이트안진에 대한 금융 당국의 행정 명령이 떨어졌다. 금융위는 분식회계를 적극 돕고, 때로는 방조한 책임이 인정된다며 영업정지 1년, 벌금 16억 원을 지시했다. 이와는 별도로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은 딜로이트안진에 대한 본격적인 소송도 준비 중이다. 분식회계 기간 매입한 회사채가 소송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 일으켰다. 경영진의 전횡과 방만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가 침묵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엄중한지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실제 대우조선해양 회계 부정이 본격화됐던 박근혜 정부 시절(2013년부터 2016년), 대우조선해양이 선임한 사외이사 면면을 보면 특정 정당에 소속된 관변단체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조전혁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외에도 신광식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은 18대 대선 기간 박근혜 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경력을 갖고 있고, 이영배 전(前) 한국농림정보센터 기획실장은 유정복 인천시장이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보좌관으로 몸담았던 인사다. 요컨대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정치인 사장과 정치인 사외이사가 모여 채권자와 주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정관계 로비에 기업의 역량을 쏟아 부은 권력형 부패 사건의 전형인 셈이다.

관료와 학계 출신 합쳐 80% 훌쩍 넘겨

사외이사 제도는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를 위해 도입된 대표적인 제도이지만 도입 20년이 지난 지금도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경영진의 전횡과 방만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 본연의 역할은 외면한 채, 정치적 외풍 차단과 대정부 대관업무를 위해 관료 및 학계 출신 사외이사 중용에 나선 결과다.

최근 미래세대정책연구소가 2015, 2016회계연도 국내 5대 그룹 상장사가 금융 당국에 제출한 주주총회 자료와 사업보고서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사외이사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전·현직 대학교수 등 학계 출신으로 드러났다. 2015년 221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109명, 2016년 회계연도엔 224명 가운데 113명이 전·현직 대학교수 이력을 가진 학계 출신이었다. 기재부와 공정위, 검찰 등 관료 출신 사외이사도 2015년 68명에서 2016년 74명으로 10% 가량 늘었다. 2016년 회계연도만 따졌을 때 학계와 관료 출신 사외이사는 모두 187명으로 83%에 달했다.

최근 학계와 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늘어난 배경으로는 앞서 언급한 이유에 더해 김영란법 이후 전개될 불확실성에 대한 기업의 선제적 조치로 읽는 해석이 많다. 공직자 기강 강화를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이들의 몸값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정부를 상대로 한 기업의 직접적인 대관업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유력 관료 출신 사외이사를 통한 밀착 소통의 필요성이 늘어날 것으로 본 것이다. 학계 출신에 대한 기업의 러브콜이 잦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권익위 유권해석으로 공직자 가운데 유일하게 현직을 유지하면서 사외이사직을 수행할 수 있게 돼 대정부 대관업무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 심리가 보다 커졌다는 분석이다.

엘지는 학계, 롯데는 관료 선호

그룹사별로 선호하는 사외이사의 출신 배경은 서로 엇갈렸다. 삼성과 엘지그룹은 학계 선호가 뚜렷했다. 특히, 엘지그룹은 2016년 회계연도에 대학 교수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60%에 달했다. 엘지그룹의 전체 40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학계 출신 사외이사는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 장진 교수(엘지디스플레이)를 비롯해 24명이었다. 엘지그룹 상장사들은 지주회사인 주식회사 엘지를 제외하면 적어도 1명 이상의 전·현직 대학교수가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롯데그룹은 5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학계보다 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많았다. 2016년 회계연도에 롯데제과가 선임한 박차석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비롯해 13명의 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활동했다. 롯데그룹이 관료 출신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배경에는 2015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형제 간 경영권 다툼과 면세점을 비롯한 유통과 소비재 등 롯데 그룹의 주력 사업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정부의 각종 규제를 비롯한 정책 풍향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그룹의 속사정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정 혼란 이후, 학계 선호 두드러져

올해 상장사 주총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인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사회 전반이 어수선한 와중에 열렸다. 5대 그룹 상장사가 새롭게 낙점한 사외이사 면면을 살펴보면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고, 권익위 유권해석(김영란법 대학교수의 사외이사 겸직 허용)으로 한층 몸이 가벼워진 학계 출신 사외이사의 약진이 돋보였다. 2017년 5대 그룹 상장사가 주주총회에서 새롭게 선임(재선임 및 신규선임)한 사외이사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와 견줘 관료 출신과 법조 출신은 각각 4%포인트, 2%포인트 줄어든 반면, 학계 출신 사외이사 비중은 약 6%포인트 늘었다. 관료와 법조인의 빈자리를 학계가 메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7년 5대 그룹 상장사가 주주총회에서 신규 또는 재선임한 사외이사 98명 가운데, 학계 출신은 지난해보다 9명 늘어난 46명이었다. 전체 신규 또는 재선임한 사외이사에 견주면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숫자다. 삼성그룹은 김난도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교수(삼성 SDI)를 비롯해 학계 사외이사 11명을 재선임 했고, 유지범 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삼성전기)를 신규 선임했다. 현대차그룹은 장지상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현대 위아)를 비롯해 3명의 학계 출신 사외이사를 재선임 했고, 남익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현대 위아)를 비롯한 4명은 신규 선임했다.

에스케이그룹은 안정호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부교수(에스케이텔레콤)를 비롯해 5명을 신규 선임했고, 최종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에스케이하이닉스) 등 5명은 재선임했다. 엘지그룹은 성태연 고려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LG이노텍)를 비롯해 6명은 재선임, 김재욱 고려대학교 교수(LG생활건강)를 비롯한 3명은 신규 선임했다. 롯데그룹은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롯데쇼핑)를 비롯한 6명과 장용성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롯데제과)를 비롯한 2명을 각각 재선임, 신규 선임했다.

연평균 9번 이사회 열고, 안건은 26건 처리

그렇다면 국내 사외이사의 업무량은 얼마나 될까? 국내 5대 그룹(삼성, 현대차, 에스케이, 엘지, 롯데) 상장사 62곳이 2016년 회계연도 사업의 성과를 담아 보고한 사업보고서를 조사했더니, 지난해 국내 5대 그룹 상장사 62곳은 약 9번 이사회를 열어 26건의 안건을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국내 5대 그룹 상장사가 선임한 사외이사는 한 달에 약 0.75번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면서 평균 3건에 못 미치는 안건을 처리했다. 그룹사별로 살펴보면 이사회 소집 건수가 가장 많았던 곳은 에스케이그룹이었다. 15개 계열사가 소집한 이사회 회의는 연평균 10.6회였다. 가장 적은 엘지그룹(약 7.5회)과 견주면 연간 약 3번 정도의 이사회를 더 소집한 셈이다. 지난해 5대 그룹 상장사 가운데 가장 많은 안건을 처리한 곳은 삼성생명과 롯데쇼핑이었다. 삼성생명은 삼성카드 지분 인수를 비롯해 총 71건의 안건을 처리했고, 그룹 내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면세점 등 다양한 이슈가 산적했던 롯데쇼핑은 모두 66건의 안건을 이사회에서 처리했다.

사외이사 10명 중 7명만 100% 참석

한 달에 한 번도 열리지 않는 이사회였지만 사외이사 모두 얼굴을 맞댄 횟수는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15회계연도에 5대 그룹 상장사 62곳(사외이사별 출석률 밝히지 않은 롯데그룹 내 현대정보기술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이 소집한 이사회에 100% 참석한 사외이사를 조사했더니 10명 중 7명 정도에 그쳤다. 조사 대상 사외이사 221명 가운데 모든 이사회에 얼굴을 비친 사외이사는 153명이었다. 2016년도 비슷했다. 사외이사 224명 가운데 155명만 이사회 참석률 100%를 기록했다. 다만, 참석률이 가장 낮았던 에스케이그룹을 제외하면 다른 그룹의 사외이사 100% 참석률은 대개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룹별로 살펴보면 참석률이 가장 높은 곳은 엘지그룹이었다. 사외이사 40명 가운데 이사회 참석률 100%를 기록한 엘지그룹 사외이사는 모두 35명(약 88%)으로 조사됐다. 이사회 참석률이 가장 부진했던 에스케이그룹 사외이사 참석률(44.44%, 54명 가운데 24명 100% 참석)에 견주면, 약 두 배 가량 높았다. 엘지그룹에 이어, 현대차그룹도 80%(44명 가운데 35명)의 사외이사가 출석률 100%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에스케이케미칼은 조사대상 62개 상장사 가운데 유일하게 이사회 회의에 100% 참석한 사외이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절대적인 업무량뿐만 아니라 업무의 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5대 그룹 상장사 이사회가 처리한 1615건의 안건 가운데 사외이사의 반대로 가결되지 못한 안건은 3건에 불과했다. 롯데쇼핑의 보류 1건과 롯데제과, 롯데하이마트 각각 반대 1건이 유일했다. 이사회 안건에 반대표가 많은 것을 마냥 좋다고 해석하기도 어렵지만 안건 가결 비율 99.8%도 사외이사의 독립적인 의사가 반영된 결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르는 수치다.

평균 보수는 6400만원, 삼성전자가 최고

연간 9번의 이사회에 참석하고 26건의 안건을 처리한 사외이사가 지난해 수령한 평균 보수는 얼마일까? 5대 그룹 상장사가 2015년 회계연도와 2016년 회계연도에 사외이사 1인에게 지급한 연간 평균 보수를 조사했더니 2015년 평균 6200여만 원에서 2016년엔 6400여만 원으로 약 3.4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소득 상위 10% 근로자의 연봉과 맞먹는 금액이다.

사외이사 보수에 가장 후한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삼성그룹은 2016년 한 해 동안 사외이사 1인에게 평균 7700만원이 넘는 보수를 지급했다. 사외이사 보수를 가장 많이 지급한 상장사는 삼성전자로 9000만원을 지급했고, 삼성증권도 사외이사 1인에게 평균 8700만원을 지급했다. 반면, 에스케이그룹은 사외이사 1인에게 가장 적은 5200만원의 평균 보수를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계열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SKC솔믹스(사외이사 1인당 평균 보수 1900만원 지급), SKC코오롱PI(사외이사 1인당 평균 보수 2500만원 지급)가 낮은 보수를 지급해 전체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

이사회 회당 보수 약 700만원, 14곳은 1000만원 넘어

사외이사가 비상근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한다는 점을 감안해 사외이사에게 지급한 이사회 회당 평균 보수를 조사했다. 사외이사에게 지급한 평균 보수를 이사회 소집 횟수로 나눴다. 그랬더니, 지난해 5대 그룹 상장사가 사외이사에게 지급한 이사회 회당 평균 보수는 700만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이사회가 두어 시간 내외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사회 회당 350만원이 넘는 시급이 지급된 셈이다.

5대 그룹 가운데 가장 후한 이사회 회당 평균 보수를 지급한 그룹사는 엘지그룹이었다. 엘지그룹 내 상장사가 사외이사 1인에게 지급한 이사회 회당 평균 보수는 9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엘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주식회사 엘지와 엘지전자, 엘지디스플레이 등 조사 대상 11개 그룹 상장사 가운데 8곳은 이사회 회당 평균 보수로 1000만원을 넘게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포함해 삼성그룹 4곳, 롯데그룹 2곳도 이사회 회당 1000만원이 넘는 고액을 지급했다.

한편, 조사 대상 62개 상장사 가운데 이사회 회당 평균 보수가 가장 높은 곳은 삼성전기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6번의 이사회를 소집하면서 사외이사 1인(감사위원 제외)에게 8600만원의 보수를 지급했다. 이를 삼성전기 이사회가 한 해 동안 처리한 안건 개수(보고사항은 제외)로 나누면 안건 당 700만원이 넘는 보수를 지급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이사회가 있을 때 마다 지급하는 추가 수당과 임원에 준하는 기준에 따라 지급되는 각종 복지 지원(건강검진비와 각종 편의시설 사용권 등)까지 보태면 지급 규모는 더 커진다.

10곳 중 3곳은 상근 직원보다 보수 많이 줘

비상근 근무자인 사외이사와 상근 근로자 간 보수를 통해 사외이사 보수의 적정성을 살펴봤더니 5대 그룹 상장사 10곳 가운데 3곳은 직원 평균 보수보다 사외이사 평균 보수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5대 그룹 상장사 62곳 가운데 직원 평균 보수보다 사외이사 평균 보수가 높은 곳은 삼성전기, 주식회사 SK등 18곳으로 조사됐다. 2015년 같은 조사와 견줘 3곳이 늘었다. 한편, 2015년 회계연도 대비 2016년 직원 평균 보수는 2.22% 상승했다. 앞서 살펴본 사외이사 평균 보수 상승률에 견주면 1.2%포인트 낮은 수치다.

직원 평균 보수 대비 사외이사 평균 보수가 높은 5대 그룹 상장사는 롯데 그룹에 집중돼 있었다. 롯데그룹 상장사 9곳 가운데 무려 7곳이 직원 평균 보수보다 사외이사 평균 보수가 높았다. 롯데그룹의 주력 사업이 유통업인 탓에 롯데케미칼과 롯데정밀화학 등 유화 양사를 제외한 나머지 7개 상장사 직원 평균 보수는 6000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롯데쇼핑, 롯데하이마트, 롯데푸드는 직원 평균 보수가 5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를 제외한 상장사 10곳에서 사외이사 평균 보수보다 직원 평균 보수가 높았다. 상대적으로 근속연수가 길고 생산 현장 중심의 수당 중심 임금체계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5대 그룹 상장사 가운데 직원 평균 보수와 사외이사 평균 보수 간 격차가 가장 큰 곳은 지난해에 이어 호텔신라였다. 2015년 회계연도에 호텔신라는 직원 평균 보수로 4100만원을 지급하고, 사외이사 평균 보수로는 8300만원을 지급해 두 배 이상 격차가 났었다. 2016년 회계연도에는 직원 평균 보수로 약 4300여만 원을 지급하고, 사외이사에겐 7500만원의 평균 보수를 지급했다.

추천부터 운영까지 ‘비싼 거수기’로 전락

요컨대 지난해 5대 그룹 상장사 사외이사는 한 달에 한 번도 안 되는 이사회에 참석해 회당 약 3건의 안건을 다루며, 99.9%가 넘는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한 대가로 5대 그룹 상장사가 사외이사 1인에게 지급한 평균 보수는 약 6400만원이었다. 이사회 회당 평균 7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사외이사를 두고, ‘비싼 거수기’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근본적인 원인은 뭘까? 사외이사 선임 과정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대주주나 경영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금융 당국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사외이사 과반수로 구성된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무늬만 독립적인 사외이사 후보추천기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지 여러 해다. 지난 1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유가증권 상장기업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가 연 평균 회의 횟수는 1.2회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치열한 논의와 논쟁을 거쳐 해당 기업에 필요하고 도움이 될 만한 사외이사를 찾기 위해 애쓰기보다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흡족해 할 만한 무난한 후보를 고르는 요식 행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등기임원으로써 사외이사가 가져야 할 책임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기업이 경영 위기에 빠졌을 때 그렇다. 지난 2월 파산한 한진해운을 비롯해 비슷한 시기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은 현대상선의 사업보고서를 조사했더니 이 회사 사외이사들은 사상 초유의 위기로 수천 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은 와중에도 매월 400~500만원에 이르는 보수를 빠짐없이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대표적인 회계 부정 사건이었던 월드컴이나 엔론 사태 당시 사외이사들이 모여 사재 수백억 원을 털어 주주 배상에 나섰던 것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제도 개혁과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사실 미국과 견주면 국내 사외이사 보수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美)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포춘 500대 기업이 사외이사에게 지급한 평균 보수는 25만 달러(한화로 약 2억 9000만원)였다. 국내 주요 기업의 사외이사 보수와 견주면 3~4배 이상 많다. 뿐만 아니라, 포춘 500대 기업의 평균 보수 상승률도 매년 2~3% 정도로 국내 사외이사와 큰 차이가 없다. 사외이사가 다루는 안건 자체도 미국 이사회와 큰 차이가 없다. 거액의 투자와 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정관 변경 등 중요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안건이 대부분이다.

결국 관건은 사외이사 본연의 업무와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다. 제대로 일을 한다면 이에따른 대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외이사에게 보다 많은 권한과 독립성을 보장해 주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엄격히 묻는 방식의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건전한 지배구조에 대한 사외이사를 비롯한 이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사외이사는 사내 경영진의 측근이 아니다. 이들은 소액주주가 선임한 감시 세력이다. 주어진 임기 동안 단기성과에 빠져 기업의 중장기 체질 개선을 외면하는 경영진 감시에 몰두해야 한다.

지난해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발표한 아시아 지배구조 순위에서 한국은 11개국 가운데 8위에 그쳤다. 태국, 말레이시아는 물론 인도에도 뒤졌다. 2000년 첫 발표 이후 8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핵심 이유로 지목되는 것은 다름 아닌 ‘지배구조 문화(Governance Culture)’다. 아무리 좋은 지배구조 관련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관심과 실행 의지가 부족하고, 눈치 보기에 급급한 사외이사로 이사회가 구성된다면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서재교 미래세대정책연구소장, 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CSR 팀장 (tjwory05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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