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바른정당 유승민,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생방송 토론회에 참석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5·9 대선에서 가장 큰 특징은 주요 후보들이 모두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복지확충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규제완화와 감세 등이 이슈로 떠올라 후보 간 공방이 벌어지던 이전 선거와는 확실히 다른 풍경이다. ‘2년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민간기업에 비정규직 총량제 적용’(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등 일부 공약에선 보수 후보들조차 파격적 주장을 펴고 있다. 이처럼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선거 구도가 형성된 배경은 뭘까?
■ 나라 안팎에서 요구되는 성장 패러다임의 변화 우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과거에 주로 통했던 성장전략의 한계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졌다. 고환율 정책이나 대기업 감세 등 수출 대기업 몰아주기를 통한 성장전략이 더 이상 한국 경제 전체에 온기가 돌게 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참여정부 때부터 가파르게 악화된 소득 불평등 수준이 보수 정부 9년 간 굳어졌다. 대표적 불평등 지표인 5분위배율(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도시 2인 이상 가구 시장소득 기준)은 2003년 4.66배에서 2009년 6.11배까지 치솟은 뒤, 2015년 5.67배로 여전히 5배를 웃돌고 있다.
한국경제학회가 지난 3월 주최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향후 핵심 정책 과제로 사회안전망 구축과 구조개혁을 꼽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기존 정부가 펴온 대기업 감세 정책이 실제 경제성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서 그 이유로 ‘재벌 중심의 경제력 집중 현상’을 들었다. 백웅기 상명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 경제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과거 정책에 대한 반성이 깊어지고 현 상황에 대한 인식과 정책 목표에 대한 진영 간 입장차가 많이 좁혀졌다”고 진단했다.
이런 변화는 국제 사회에서 먼저 감지됐다. 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2010년부터 꾸준히 규제완화·감세 등 기존 ‘공급중시 경제학’에 기반한 정책 권고 대신 적극적 재정 확대와 사회안전망 확충과 같은 ‘적극적 수요 창출’을 위한 정부 역할을 강조해왔다. 특히 소득 불평등 축소를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을 가리키는
‘포용적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다.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채택된 성장 전략도 ‘포용적 성장’이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포용적 성장에 관한 화두나 정책 권고가 나왔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등한시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 OECD 국가 평균을 밑도는 복지수준♣]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오이시디 국가들에 견줘 지나치게 낮다는 점도 진보·보수 후보를 구분하지 않고 일자리·복지 공약이 쏟아져나오게 된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지출(SOCX) 비중(국내총생산 대비)은 지난해 기준 10.4%로,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21%)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노인빈곤이 심각하고,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9.6%(2013년 상대빈곤율 기준)로 오이시디 최고 수준이다. 저임금 노동자 비중도 2014년 기준 23.7%로 오이시디 국가 중 아일랜드와 미국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저임금 노동자는 임금 중위값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이들로, 비중이 높을수록 근로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보수정부는 아직 공적연금 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한국적 특수성을 근거로 복지 확대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등 뒤늦게 복지 확충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탓에 그 효과는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국내 고용 및 복지 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견줘 훨씬 더 열악하다는 것이 통계로 확인되면서, ‘노동시장이 과도하게 경직돼 있다’는 식의 기존 보수진영 논리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복지 수준이나 노동시장 상황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경락 허승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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