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nomy | 정책통 블로그_비정규직 통계 논란
그래픽_김승미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에 24일 오전 고용률과 취업자수, 비정규직 지수 등 각종 지표들이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영계선 제한적으로 14.9% 주장도 통계청은 2003년부터 경제활동인구조사 본조사에 덧붙이는 부가조사 형태로 비정규직 조사를 벌여왔다. 매달 본조사에서 종사상 지위(상용·임시·일용)를 조사하고 부가조사에서 세부 근로형태를 파악하는 식이다. 이때 비정규직 정의 및 범주는 2002년 노사정위 합의에 따르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청이 집계한 비정규직 규모는 664만4천명(32.8%, 2016년 8월 기준)인데, 여기에는 계약직 사원과 일용직 노동자 등으로 불리는 기간제 근로자와 파트타이머, 파견·용역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가정 내 근로자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노동계 의견을 대변하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쪽은 같은 기간 비정규직 규모를 874만명(44.5%)으로 잡고 있다. 이런 차이는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장기간 임시직으로 일하는 ‘장기임시직’ 등에서 벌어진다. 종사상 지위가 임시·일용직이지만 ‘암묵적인 고용 관행에 의해 계속 근무는 할 수 있다’고 답한 이들이다. 이들을 통계청은 정규직으로, 연구소는 비정규직으로 간주한다. 연구소는 이들의 일자리 질이 전체 비정규직 평균과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했고, 통계청은 계속 근무가 가능한지에 주목했다. 최대한 비정규직을 좁게 해석하려는 경영계는 또 다른 주장을 편다. 용역이나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비정규직에 포함하지 않고 기간제 근로자만 고려하면 비정규직 비중이 293만명(14.9%)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의 의미를 사회적 합의로 도출하고, 명확한 질문을 바탕으로 통계가 작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15년 전 노사정 합의 이후 비정규직 규모와 상황은 큰 변화를 겪었는데 아직도 당시 기준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파악하고 대책을 만든다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의 장신철 기획부단장(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2002년 (비정규직 범주에 관한) 노사정위 합의 이후 상황이 바뀐 것도 많고 노사 간 이견도 많아서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다고 할 때 비정규직 중에 어떤 대상을 정책적으로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일자리위 구성이 완료되고 과제발굴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논의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② 공식 조사서 누락되는 비정규직 현재의 조사 방식으로는 용역·파견·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파악이 어렵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기 위해 찾았던 곳도 간접고용이 많은 인천국제공항이었다. 이들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부가조사 질문은 ‘임금을 지난주 일한 직장에서 받았습니까? 파견업체 또는 용역업체에서 받았습니까?’가 전부다. 특수고용·사내하청 등 누락 가능성
본인이 고용지위 모르는 경우 많아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사내하청이라는 단어 자체가 질문에 포함돼있지 않은 부분이 문제다. 특히 제조업 현장에서 ‘파견’(원청업체가 업무지시)으로 일을 하면서도 불법성을 가리기 위해 ‘사내하청’(하청업체가 업무지시)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파견 노동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사내하청 노동자라고 생각해 파견·용역만 담긴 질문지에서는 답변을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조사 방식 자체가 사업체 단위(전국에 흩어져있는 개별 사업장) 조사인 탓에 기업체 단위 조사인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공시에 나온 수치에 비해서도 규모가 많이 축소돼 있다”고 지적했다. 제조업체에선 상당수 사내하도급(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논란이 이어져 왔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이상한 사장님’으로 부르며 문제를 제기했던 특수고용노동자 질문 문항도 논란거리다. 본조사에서 본인을 자영업자로 여기고 잘못 답변하면, 비정규직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부가조사에서 다시 응답하더라도 문항에서 사례로 들고 있는 예시가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6종류뿐이어서, 다양한 업종으로 번져가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가 본인이 노동형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처우는 비정규직 수준이지만 고용만 보장돼 노동계가 ‘무늬만 정규직’으로 꼬집고 있는, 무기계약직 규모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현재는 관련 질문이 비정규직 조사에 포함돼 있지 않다. ③ 올해 조사부터 더 부실해질 우려도 비정규직 조사는 2007년부터 1년에 두 차례씩 6개월 간격으로 이뤄졌다. 한 해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린 지시 때문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2006년 4월 ‘비정규직 실태 및 정책과제’라는 이름의 국정과제 회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자세히, 내실 있게 하라고 주문했고 이에 따라 조사 횟수를 연간 두 차례로 늘렸다”고 말했다. 조사 횟수 연간 2회→1회로 축소
올해 외려 삭제되는 질문도 있어 하지만 통계청은 올해부터 이를 다시 연간 1회로 줄이기로 지난해 결정했다. “각종 부가조사가 늘어 표본가구의 응답 부담이 늘어난 데다, 3월과 8월 조사 사이에 구조적인(계절적인) 차이점이 없다”는 이유였다.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정부 관심이 늘어나는 가운데, 정책 효과를 살펴볼 도구인 비정규직 조사 횟수는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고용부 등 관련 부처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정해진 방침이었다”고 설명했다. 부가조사의 질문 문항도 종전보다 더 줄어든다. ‘고용될 때 서면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지’를 묻는 66번 문항과 ‘지난주 직장에서 주 40시간 근로제를 실시했는지’를 묻는 67번 문항이 사라진다. 두 문항의 삭제를 요청하는 ‘통계작성변경 승인요청서’를 보면, 문항 삭제 사유는 ‘주 40시간 근로제 등 정착으로 관련 부처의 삭제 요청 반영’이라고 나와 있다. 김유선 선임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사업장의 주 40시간 근로제 준수율은 낮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정착’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업체의 제도 준수 여부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보여줄 수 있는 질문을 왜 삭제해버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8월 조사에서 비정규직 가운데 주 40시간 근무를 하는 곳에서 일한 경우는 51%로 한해 전보다 0.8%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문항에 72.5%가 ‘그렇다’고 답해 1년 전보다 0.2%포인트 오른 정규직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박영삼 국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문 대통령의 핵심 과제가 된 만큼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매달 시행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본조사 등에 비정규직 조사 문항을 통합해 함께 조사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더 많은 표본 필요…“업종·지역별 분석도 가능해야”
비정규직 조사 표본은 대략 3~4만명 정도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대상인 표본가구 3만3천가구 6~7만명 가구원 가운데, ‘임금 근로자’로 분류된 이들만 본조사 뒤에 이어지는 부가조사(비정규직 조사) 설문지를 받는다. “대략적인 추세를 알 수는 있지만 깊이 들어가면 신뢰성을 가지기 어려운 표본 수”라는 데 통계청과 통계 전문가들 모두 동의하고 있다. 항목이 구체적일수록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하다.
매년 통계청의 비정규직 조사 원자료를 바탕으로 자체 비정규직 규모를 내고 있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이남신 소장은 “지역별 비정규직 규모를 파악하고 싶지만, 통계청에서 기초자치단체 수준의 원자료를 내놓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마찬가지로 원자료를 분석해 자체 집계하는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산업별 통계를 1단계인 농림어업, 보건의료 같은 수준에서만 제공하고 있고 그보다 더 구체적인 농업, 의료업, 보건업 수준까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산업별 정책 대안을 내놓기에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현재 표본 수로 기초지자체 단위나 산업 소분류로까지 나아가면 지표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탓에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수치를 공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한데 예산 제약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구체적 지수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를 털어놨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이 이렇게 집계한 644만4천명 비정규직은 한 달(직전 3개월 평균) 146만7천원을 벌었고 1주일 평균 33.2시간을 일했다. 정규직과 임금 격차는 130만1천원으로 1년 전보다 7만원정도 더 벌어졌다.
방준호 기자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