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공정거래법 체계는 공정위 직원 550명이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과 모든 거래 행태를 ‘독점적으로’ 감시·규제하도록 돼 있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청사. <한겨레> 자료사진
▶ 새 정부에서는 어느 부처보다도 공정거래위원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분야 첫 인사로 재벌개혁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내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공정위를 담당했던 ‘공정위 전문가’ 최병천 전 보좌관(민병두 의원실)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게 띄우는 공개편지를 보내왔다.
김상조 교수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이하 후보자)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저는 19대 국회 정무위원회에 소속됐던 민병두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의 최병천 정책보좌관입니다. 20대 국회가 시작하면서 그만뒀기에 이제는 전 보좌관입니다. 공정위 관련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을 만들 때, 그리고 금융위원회 현안이었던 금융감독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금융감독 체계와 관련해 통화하고 회의하던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공정위를 담당하면서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의 모순과 문제점이 무엇인지, 불공정 갑을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했던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공정위의 기본 임무는 4가지입니다. 첫째, 반독점 경쟁촉진입니다. 담합 등 카르텔 규제가 해당합니다. 둘째, 경제력 집중 억제입니다.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출자총액제 등의 재벌 규제가 해당합니다. 셋째,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입니다. 가맹점·대리점을 포함해 흔히 말하는 갑을관계 문제가 해당합니다. 넷째, 소비자 보호입니다. 후보자님은 이 중에서 특히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재벌 지배구조 분야에서 1인자인 분입니다. 제가 주로 고민했던 분야는 1번, 3번, 4번입니다.
후보자님은 내정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공정위가 진짜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골목상권 등 수많은 자영업자 서민들의 삶에 필요한” 갑을관계라고 말했습니다. 갑을관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집중”하겠다는 발언을 보고 ‘아, 자칫하면 공정위가 예전처럼 그대로 흘러갈 수 있겠구나’라는 우려가 들어 꼭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불공정의 본질은 공정거래법 자체에 있습니다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리면, 불공정·갑을관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원인은 “행정력을 총동원”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행정력을 총동원하는 것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공정·갑을관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 전체가 약탈촉진형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는 불법의 예상이익(기대이익)이 불법의 예상비용(기대비용)보다 크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 작동구조의 핵심은 △정보 △인센티브 △의사결정의 불일치입니다. 정보, 인센티브, 의사결정은 미시경제학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불공정·불법 행위를 때려잡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불공정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해서, 그 사람이 불공정·불법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의사결정’(행동)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의 공정거래법 체계는 불합리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공정위 미션은 4가지입니다. ①반독점 경쟁촉진 ②경제력 집중 억제 ③불공정 규제 및 갑을관계 규제 ④소비자 보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공정행위에 관한 ‘정보’의 특징입니다. 공정위가 관할하는 4가지 임무 중에서 ②에 해당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은밀한 정보’입니다.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은밀한 정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담합(카르텔) 정보는 담합에 참여했던 갑A와 갑B만 알 수 있는 정보입니다. 정보의 특성상 그밖의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정보입니다. 그리고 갑을관계에 해당하는 불공정거래 정보는 갑질을 한 갑A와 갑질을 당한 을A만 알 수 있는 정보입니다. 이와 같이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은밀한 정보’인 경우 정보를 아는 당사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주고, 불공정을 신고하고, 불공정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인센티브·보상이 체계적으로 차단돼 있다면, 정보를 알 만한 사람조차도 불공정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체념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싸워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며, 싸워봐야 ‘보복’만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2015년 기준 국세청에 등록된 법인 기업체 수만 약 80만개입니다. 이들의 총거래량은 최소한 수억 회에 달합니다. 이들 기업체가 어디서, 어떤 갑질을 하는지 세종시에 있는 공정위 공무원들이 전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속성상 며느리도 모르고, 시어머니도 모르고, 공정위 직원도 모릅니다. 공정위 직원은 세종시와 대도시 5개 분원을 포함해 약 550명입니다. 현재 공정거래법 체계는 공정위 550명이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과 모든 거래 행태를 ‘독점적으로’ 감시·규제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에 다름 아닙니다. 공정거래법 체계를 △정보 △인센티브 △의사결정(참여)의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약탈촉진형’ 체계와 ‘약탈규제형’ 체계로 구분하면 ‘표’와 같습니다.
이제, 정보-인센티브-의사결정의 불합리한 구조가 공정위의 다른 이슈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크게 세 가지만 짚고자 합니다. 첫째, 공정위의 본질적 미션은 경쟁촉진위원회인데, 불공정거래 규제 역시도 ‘독점’이 아닌 ‘경쟁적’ 방식이 중요합니다. 둘째, 당사자가 공정거래 감시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체적인 방안들입니다. 셋째, 공정위의 관피아·낙하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공정위의 미션은 ‘경쟁촉진위원회’
전속고발권 ‘독점’ 유지는 잘못
체계적 작동 가로막는 포상금 제도
피해 당사자는 포상금 대상자 제외돼
포상금 지급 재원 규모도 ‘쥐꼬리’
부패방지법·공직자윤리법 등 있지만
부정부패 문제 ‘윤리적’ 접근은 한계
규제권한 독점과 불투명 깨는 게 관건
정보투명성 높이는 방법 마련해야
대통령-공정위원장 개혁의지에 기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케이티(KT) 사옥 앞에서 참여연대가 이동통신 3사 담합 의혹 신고서 제출을 하기 전에 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통신요금 기본료 폐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공정거래 규제도 ‘경쟁’해야 합니다.
첫째, 공정위의 본질적 미션은 ‘경쟁촉진위원회’인데, 공정위 자체도 경쟁촉진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공정위는 피해 당사자와 경쟁해야 하고, 불법을 감시하는 다른 관료조직인 검찰과 경쟁해야 합니다. 공정위가 민간인(피해 당사자들)과 경쟁하고, 검찰과 경쟁하는 체제가 바로 ‘미국식’ 공정거래법 체계입니다.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민간독점과 관료독점은 이론적·실천적 폐해가 동일합니다. 그동안 경쟁촉진을 본질적 미션으로 하는 공정위는 자신들의 권한(전속고발권 등)에 대해서는 ‘독점’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둘째, 정보-인센티브-의사결정을 일치시키는, 당사자가 공정거래 감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개혁 방안을 몇 가지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은밀한 정보’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공동범죄 가담자’입니다. 예컨대, 담합 정보는 속성상 담합에 가담한 갑A와 갑B만 알 수 있는 정보입니다. 이들에게 ‘정보를 드러낼’ 인센티브를 줘야 합니다. 이에 대한 해법은 ‘배신촉진법의 활성화’입니다. 배신촉진법은 게임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논리구조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카르텔-담합의 거래행위자에게 적용되는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 제도입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범죄자들끼리 불신을 조장하게 돼’ 담합을 억제하는 효과가 작동됩니다. 실제로 공정위는 2005년 담합에 대한 리니언시 제도를 정비했는데, 이후 담합 적발률이 획기적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시 리니언시 제도개혁은 ‘감면해줄 수 있다’는 재량 조항을 ‘감면한다’는 준칙 조항으로 바꾼 것입니다. 리니언시 제도는 단기적으로는 비윤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사회 전체의 윤리성을 강화시키게 됩니다.
②‘피해 당사자’인 경우입니다. 갑질을 당한 을이 해당합니다. 이 경우 해법은 ‘신고촉진법의 활성화’입니다. 역시 원리는 같습니다. 피해 당사자가 ‘정보를 드러낼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가장 오래된 제도는 바로 ‘민법’입니다. 특히 미국식 민법의 경우 △징벌적 배상제도 △집단소송제 △민간인도 검찰에 준하는 자료제출 요청권을 갖는 증거개시 요청권(디스커버리 제도)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대안은 어느 정도 알려졌기에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공정거래법 체계 내에서, 저는 특히 ‘포상금 제도’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현재 공정위의 포상금 제도는 ‘작동되지 않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3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①갑을관계 이슈에서 ‘정보를 알 만한’ 피해당시자 을은 모두 포상금 대상자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공정거래법 체계에서 갑을관계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은 4가지인데, △하도급법에서는 하청기업 사장님이 △가맹사업법에서는 가맹점주가 △대규모유통업법에서는 납품업자들이 △대리점법에서는 대리점 점주들이 제외돼 있습니다. 예컨대, 남양유업 본사의 횡포에 대해 남양유업 점주들은 포상금 대상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②포상금 지급 재원 규모가 쥐꼬리만큼입니다. 역시 ‘작동되지 않도록’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③‘반드시 줘야 하는’ 준칙 조항이 아니라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는’ 재량 조항입니다. 공정위는 2005년 담합에 대한 리니언시 규제를 재량적 방식에서 준칙적 방식으로 개혁했기 때문에 담합 적발률이 획기적으로 올라갔다고 자평합니다. 그러나 같은 원리를 포상금에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달 17일 오후 청와대의 공식 발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현행 포상금 제도는 잘못 설계돼 있습니다
포상금 제도가 실효적으로 작동하려면 하도급-가맹사업-대규모유통-대리점에서 ‘갑을관계 피해자’가 포상금 대상자가 될 수 있어야 하며, 재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며, 운영방식은 공정거래법 리니언시 제도가 그렇듯, 반드시 줘야 하는 ‘준칙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곧바로 과징금을 직접 사용하든 아니면 과징금의 일정액을 별도 기금으로 적립하든 피해당사자 을이 적극적으로 신고촉진 역할을 하도록 ‘과징금과 연동해서’ 일정액을 지급해야 합니다. 포상금 제도개혁을 하려면,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의 제4호, 제5호도 적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제64조,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64조의7 등을 개정해야 합니다.
셋째, 공정위의 관피아, 공정위 출신의 낙하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입니다. 한국에서 관료의 부정부패 문제를 막기 위해 부패방지법, 공직자윤리법,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차례차례 만들어졌습니다. 변호사 출신 시민운동가들이 주도했던 이들 법은 공통적으로 부정부패 문제를 ‘윤리적’으로 보며, ‘처벌’을 강화하는 접근을 합니다. 저는 부정부패를 ‘윤리적+처벌강화’ 위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고 봅니다. 관료·공무원의 부정부패 문제는 ‘경제학적 현상’으로 봐야 더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관피아-낙하산이 작동되는 구조의 핵심은 규제 권한의 ‘독점’입니다. 불법·불공정에 대해 ‘정보를 알 만한 당사자들’에게는 인센티브가 차단돼 있고, 반면 소수의 관료·공무원에게만 규제권력이 주어져 있다면, 재벌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매수할 유인’이 그만큼 강해지게 됩니다.
부정부패의 경제학적 본질은 규제권한의 독점과 불투명성(정보의 비대칭성)입니다. 관료·공무원의 부패를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특정 부처만 장악하고 있는 ‘독점적’ 규제권력을 해체하고, ‘경쟁적’ 방식으로 규제체계를 개혁하는 것입니다. 또한, 관료들만 접할 수 있는 정보를 국민 대다수가 접할 수 있도록 알권리를 강화해, 정보 투명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는 금융으로 치면 ‘공시제도’와 원리가 같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듯, 독점은 경쟁을 이길 수 없고, 부정부패는 투명한 정보 앞에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개혁은 ‘관료 출신’ 공정거래위원장은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강한 개혁의지를 가진 대통령과 강한 개혁의지를 갖고 있되 ‘민간 출신’ 공정거래위원장이 있을 때에만, 이러한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개혁입니다. 왜? 을들의 피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개혁이지만, 관료·공무원 조직의 권한을 부분적으로 빼앗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폐란 본래 특정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닌, ‘오랫동안 쌓여 뿌리박힌 (제도적) 폐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적폐는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공정거래법 체계 곳곳에도 오랜 세월을 거쳐 쌓여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개혁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있는 공간에서도 적극 돕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병천 공정위 담당 전 국회 보좌관·정책혁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