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인 지난 4월10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중소기업단체 대표들과 간담회에서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 등 주요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중심 업종에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으려고 시행 중인 적합업종 지정제도가 일시적인 파행 위기에 놓였다. 적합업종 지정의 최종 만료시한이 무더기로 다가오는데 국회나 정부의 대안 마련 일정은 불투명해서다.
6일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한 민간 자율합의 및 권고로 운영되고 있는 적합업종제도의 지정 최장기한(6년)이 만료되는 업종(품목)이 올 연말까지 65개에 이른다. 2011년 시작된 적합업종 지정은 1차 3년 경과 뒤 재합의로 3년을 추가해 6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해제된다. 순대, 고추장, 주물, 판유리가공품 등 전형적인 중소기업 생계형 업종들이 시한 만료를 앞두고 있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알고 대안을 강구하기는 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유력 후보들이 법적 강제력이 있는 적합업종 제도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정부 대응은 어정쩡해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적합업종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공약했다. 중소기업계에선 특별법 제정으로 민간 자율규범이라는 현행 제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특별법 제정과 정부의 시행여건 마련에 걸리는 시간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과 이훈 의원이 각각 지난 2월에 발의한 법안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국회 본회의까지 올라가기엔 길이 멀다.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정부 고시 등 후속 작업까지 고려하면 빨라야 내년 초에나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기존 제도의 효력이 소멸하는 연말까지 적합업종 제도는 일시적이지만 사실상 마비된다. 중기청 관계자는 “새 제도 시행 때까지 지정 시한이 만료되는 적합업종에 대해서는 임시방편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도 대처 방안 마련에 나섰다. 강재영 운영국장은 “이달 말 열릴 예정인 전체회의에서 시한 만료 품목에 대해 민간 자율의 상생협약 대상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체 29명으로 구성된 동반성장위 위원들 가운데 대기업 쪽을 대표하는 11명 위원들의 합의 여부가 미지수이다. 2014년 1차 재연장 때처럼 합의에 반대하거나 지연하게 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특별법 제정도 난항이 예상된다. 우선 자유한국당이 강제성이 있는 적합업종 지정제도를 반대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규제가 아니라 지금처럼 민간의 자발적 합의로 제도를 운용하자는 취지이다. 정부 부처간 협의 과정에서 늘 등장해온 ‘통상 마찰 우려’라는 반대 논리도 법제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다. 중기청이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하면 입법발의권을 얻게 돼 목소리를 키울 것으로 보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 등 통상규범을 중시하는 부처와의 줄다리기에서 여전히 힘이 달릴 것이라는 게 중소기업계의 우려이다. 최윤규 중소기업중앙회 산업지원본부장은 “순대 사업에 외국계 기업이 뛰어들 가능성도 거의 없는데도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 통상 마찰의 우려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허구적 상황을 근거로 한 반대 논리는 배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합업종 법제화는 특정 분야에 대한 대기업의 진입을 강제로 제한하는 제도이다. 시장경쟁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사자가 초원의 풀까지 뜯어먹는 것’에 비유되는 약탈적 시장과 기형적 산업생태계를 바로잡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공공정책의 목적에 부합한다. 대·중소기업 상생과 공정한 경쟁을 위한 경제 질서의 구축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헌법 123조 3항에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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