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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노동존중·나눔·연대…제주에 ‘착한 경제공동체’ 씨앗 뿌려요

등록 2017-07-12 21:17수정 2017-07-12 21:24

[사회적기업 10년, 새로운 모색]

제주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비정규직 제로’ 마트에서 시작
‘갑질’ 없는 상생 편의점까지
일자리 창출·지역 활성화 앞장

“수익의 일부로 연대기금 조성
지역 경제공동체 활성화가 목표”
제주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행복나눔마트 오라점(2층)과 로컬푸드 한식뷔페 ‘섬채’(2층) 전경.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제공
제주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행복나눔마트 오라점(2층)과 로컬푸드 한식뷔페 ‘섬채’(2층) 전경.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제공
마트와 편의점 등 유통업은 대표적인 장시간·저임금 업종이다. 고용 형태도 비정규직 일색이다. 유통업 성장의 이면에는 알바의 한숨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제주 행복나눔마트의 ‘실험’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6일 오후 찾은 제주시 노형동 행복나눔마트 매장. 파는 물건이나 매장 구조는 여느 마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매장 유리창 바깥쪽에 붙은 홍보 문구가 시선을 끌어당겼다.

‘참여와 협동’ ‘공동체 활성화와 지역사회 기여’ ‘나눔과 행복’

행복나눔마트 노형점 유리창에 붙어 있는 안내문.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제공
행복나눔마트 노형점 유리창에 붙어 있는 안내문.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제공
이 세 가지는 행복나눔마트의 핵심 가치다. 평범한 마트가 이런 범상치 않은 가치를 내세우게 된 것은 마트의 탄생 배경에서 연유한다. 이 마트는 사회적기업인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매장이다. 2013년 3월, 현재 매장 자리에서 영업중이던 한 마트를 인수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주민들의 협동과 연대를 통한 지역공동체 완성’을 꿈꾸는 비영리단체 ‘행복나눔제주공동체’가 산파 구실을 했다. 이 단체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조합 출자금을 모았다. 기존 마트 직원들도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이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국 최초의 직원협동조합 마트가 태어났다.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다양한 경제공동체 조성. 이경수 조합 이사장은 “우선, 노동을 존중하고 적정한 임금을 보장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사업장이 늘어나면 연대기금을 조성해 제주지역에 다양한 경제공동체를 꾸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업장별로 수익의 일부를 떼어 기금을 만든 뒤, 의료기관·산후조리원·보육시설·요양원 등 지역 주민들의 생애주기별 욕구를 채워주는 공동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이경수 이사장이 그리는 경제공동체의 큰 얼개다.

지난 6일 오후 제주 행복나눔마트 오라점에서 손님들이 장을 보고 있다. 제주/이종규 연구위원
지난 6일 오후 제주 행복나눔마트 오라점에서 손님들이 장을 보고 있다. 제주/이종규 연구위원
첫째 목표인 ‘좋은 일자리’를 위해 행복나눔마트는 ‘모든 직원 정규직 채용’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인수 당시, 직원 11명 중 정규직은 2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9명 모두 정규직이다. 근무시간도 주 6일 하루 11~12시간에서 주 5일 하루 8시간으로 줄었다.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인력을 늘린 것이다. 추가 채용을 하면서도 임금엔 손대지 않았다. 시행 첫해엔 인건비 증가분 탓에 소폭 적자였으나 이듬해부터 매출이 늘면서 흑자로 돌아섰다. 임금도 꾸준히 올라 다른 마트와 견줘 급여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인건비가 늘었는데도 안정적인 흑자를 유지하는 비결이 뭘까? 이경수 이사장은 “직원협동조합이다 보니 아무래도 주인의식이 생기고, 고객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지역사회에 사회적기업의 취지를 적극 알린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전환 이전부터 줄곧 이곳에서 일해온 이선화(48)씨도 생각이 비슷했다.

“예전 일반 마트 때와 비교해 보면,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청과물을 들여올 때도 예전에는 거래처에서 배달돼 온 걸 받아서 썼지만, 지금은 더 싸고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 담당자가 직접 농협 공판장에 가서 구매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할까. 어쨌든 일하는 사람 처지에선 괜찮은 직장이니까.”

로컬푸드 한식뷔페 ‘섬채’ 내부 모습.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제공
로컬푸드 한식뷔페 ‘섬채’ 내부 모습.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제공
마트 1호점(노형점)의 성공은 새로운 도전의 발판이 됐다. 지난해 1월 제주도 특산물과 제주지역 작가들이 만든 생활·문화상품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 ‘베리제주’를 시작으로, 마트 2호점(오라점·2월), 로컬푸드 한식뷔페 ‘섬채’(4월), 로컬푸드 레스토랑 ‘애월바베’(9월)가 잇따라 문을 열었다. 9월에는 베리제주의 오프라인 매장도 생겼다. 베리제주는 제주지역 음악인들의 공연 기획 및 티켓 판매 등 문화예술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이들 5개 매장에서 60명이 일하는데, 비정규직은 한 명도 없다. 유통·서비스업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행복나눔 매장’들의 사례를 지역사회로 확산시키는 것도 목표 가운데 하나다. 지역 내 유통·서비스업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데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매장 가운데 ‘애월바베’는 행복나눔협동조합의 또 다른 실험이다. 조합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경험을 쌓은 직원이나 지역 내 청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의 첫 결과물이다. 이경수 이사장은 “조합 내 식당 운영의 노하우를 살려 소규모 식당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이어나갈 계획”이라며 “조합의 지원을 통해 창업을 하는 경우, 수익의 일정 부분을 연대기금으로 내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독립편의점 ‘콘쿱’ 내부 모습.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제공
독립편의점 ‘콘쿱’ 내부 모습.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제공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갑질’의 대명사가 된 편의점 시장의 대안적인 모델을 찾는 실험에도 나섰다. 지난달 말 문을 연 독립편의점 ‘콘쿱’ 1호점이 그것이다. 콘쿱은 편의점(convenience store)과 협동조합(coop)의 합성어다. 가맹본부와 점주, 노동자의 상생을 지향한다. 청년회나 부녀회 등과 연계해 마을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익의 일부를 마을에 환원하는 방안도 구상중이다.

4년 전과 견줘 사업 영역도 넓어지고 안정적인 운영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공동체 연대기금’까지는 성과가 미치지 못하고 있다. 행복나눔마트 노형점을 빼고는 이익을 내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업 2년차인 올해에는 행복나눔마트 오라점과 섬채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조합 쪽은 기대하고 있다.

연대기금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나눔과 연대’ 활동은 꾸준히 해오고 있다. 도내 시민단체, 복지관, 자활센터 등 30여개 단체 및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운영비 등을 후원한다. 해마다 설과 추석에는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쌀·생필품 등을 담은 행복나눔꾸러미를 전달한다. 아름다운가게의 사랑나눔보따리 행사에도 해마다 1004만원씩을 쾌척한다.

행복나눔협동조합에 대한 지역사회의 평가는 후한 편이다.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노동을 존중하고 직원들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면서도 흑자를 내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인데, 다양한 실험들을 잘 해내고 있다. 이런 모델이 확산돼, ‘협동조합 간의 협동’으로 지역 문제를 풀어가는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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