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DP변동성이란 조사 대상 기간 동안 전기 대비 분기성장률의 표준분포값을 가리킨다. 위 그림은 2000~2007년 GDP 변동성 대비 2000~2017년 GDP 변동성 배율의 국가별 분포. 자료 : 한국은행
국내 경기가 2010년 이후 7년여 동안, 눈에 띄는 경기 순환 흐름을 보이지 않은 배경은 뭘까? 이는 국내 산업의 독과점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하지 못했고, 노후 불안과 불확실한 경기로 인해 소득이 늘어도 소비를 늘리는 대신 저축을 늘려가는 행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경기 변동성 축소가 경제 예측력이 높아지고 경제 정책이 발전해서 따라온 선물은 아니라는 진단이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경기 변동성 축소에 대한 재평가’ 보고서(<조사통계월보 7월호>)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경기 변동성(전기비 분기성장률 기준)은 2010~2017년에 금융위기 이전인 2000~2007년보다 10% 줄어드는 데 그쳤으나 한국은 같은 기간 절반 남짓 축소됐다. 보고서는 “성장률 외에도 경기동행지수 등 다른 경제지표로 분석해도 큰 폭의 경기 변동 축소가 관측됐다. 한국의 경기 변동성 축소폭은 오이시디 35개 회원국 중 3번째로 컸다”고 밝혔다. 경기 변동성이 축소된 데는 한국만의 남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그 이유를 기업과 가계 두 영역으로 나눠 짚었다. 우선 기업은 비관적인 경기 전망이 고착화되면서 재고를 추세적으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고는 경기 전망의 변화에 따라 늘리거나 줄여야 하는데 기업들이 계속 경기를 어둡게 보면서 무조건 재고를 줄여 수익성을 지키려는 보수적·안정지향적 경영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쓴 이홍직 한은 조사국 차장은 “혁신 기업이 등장하지 않는 시장·규제 환경도 경기 변동폭을 줄이는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재벌그룹 중심으로 주요 업종에서 독과점화 현상이 짙어지고 각종 규제로 진입장벽마저 높은 터라 새로운 혁신 기업이 등장하지 못하고 기업가 정신도 사라지면서 산업 내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가계 영역에선 인구 고령화와 경기 불확실성 영향으로 예비적 저축(경기가 나빠질 것에 대비해 하는 저축)이 크게 늘어난 점이 경기 변동폭을 줄인 이유로 꼽혔다. 이 차장은 “소득이 늘어날 때 외려 저축을 더 크게 늘리는 행태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2010~2015년 한국의 가계 순저축률(순저축액을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비율) 상승폭은 오이시디 회원국 중 노르웨이와 스웨덴 다음으로 3번째였다. 소득이 늘어도 소비를 하지 않으면 경기에 활력이 붙지 않는다.
아울러 보고서는 “경기 변동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경기 국면 등의 식별 오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기 진단에 신중해야 한다”며 “민간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등락 주기가 빠른 수출이 경기 변동을 주도하는 시기에선 내수 동향에 주목하며 중기적 시계에서 경기 흐름을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수출 주도로 이뤄지는 경기 개선세에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내수의 원천인 가계의 소득 기반을 확충하는 데 정책 역량이 집중돼야 한다는 뜻이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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